노는 것은 다 노는 것인가? 학교 다닐 때 좀 논다고 하면 아무래도 부정적 냄새가 많이 난다. 그리고 놀고 있다는 말도 비아냥거리는 부정적인 어투다. 정말 노는 것은 부정적일까? 돌아보면 인류는 놀이를 통해서 문제 해결능력을 길렀지 않는가.

대부분 놀이에는 집단의 이해와 규칙이 담겨있다. 놀이하는 아이들은 활기찬 즐거움과 더불어 끊임없이 자신의 선택에 맡겨진 법칙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것은 결국 삶의 규칙을 익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놀이는 곧 아이들의 삶이며 발달의 지름길인 동시에 배움의 수단이다.

아이들에게 놀이란 생활의 원초적인 힘이면서 전인적인 발달과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데,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자기에게 주어지는 경험들을 검증하고 평가하며 이해하고 구성해낸다.

스미스(Sutton Smith)는 아동의 놀이를 4가지 기본양식으로 구분했다. 첫째는 세계를 모방하는 것이고, 둘째는 세계를 탐색하고 분석하는 것이며, 셋째는 성취동기와 경쟁에의 노력을 습득하는 것, 그리고 넷째는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경험을 종합하는 것이라 했다.

이처럼 놀이가 제공하는 모델은 앞으로의 세계를 앞질러 보여준다. 놀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효율적인 학습의 장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찍이 놀이의 중요성에 대해서 교육학자 프뢰벨이나 프라이드 같은 심리학자들조차 창조적 놀이를 끊임없이 강조한 바 있다.

이들이 강조했던 것처럼 아이들의 생활은 대부분이 창조적 놀이로 이루어져 있고 많은 행동이 놀이와 관련돼 있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생활의 직접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면서, 질서를 창조한다.

이 질서가 어긋나면 놀이의 특성은 사라지고, 놀이는 무가치해진다. 아이들은 엄격한 자신만의 놀이 규칙을 통해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제한적이고 일시적이지만 완벽한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고자 한다.

이러한 아이들의 놀 권리를 박탈한다면 마치 헤엄치는 자유를 빼앗긴 물고기라고 교육학자 유덕인은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호이징가에 의하면 놀이의 장은 일정한 규칙들이 지켜지고 있는 신성하고 분리된 영역이라고 설명한다. 쉴러는 비슷한 맥락에서 인간은 완전한 의미에서 인간인 한에서만 놀고, 노는 한에서만 완전한 인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이들은 놀이에 몰두하면서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고 합리적인 지적사고의 방향으로 진보한다. 그리고 창조적 놀이를 통해서 문제 해결능력과 도구사용능력, 사회성 등을 복합적으로 학습한다. 이처럼 아이들의 효율적인 학습의 장을 지금 우리는 지켜주어야 한다. 그러니 제발 아이들을 놀게 하자.

/황무현(마산대학 아동미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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