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타러 가서 팔자 한번 고쳐볼까

“임자! 팔자 고쳤어. 먼저 탄 박 만큼이나 이 박에서도 금은보화가 쏟아질 테니 말이오!”
“아이구 평생 밥 빌어먹으며 애나 싸지를 줄 알았더니 제비새끼 덕분에 복 터졌어요.”
흥부네는 박속을 긁어 죽이나 한 솥 장만하려고 솥에다 물을 붓고 불을 지필 요량이었겠다. 그런데 첫 번째 박을 가르자 안에서 갖은 재물이 그만 쏟아졌지 뭔가. 깜짝 놀라 자빠졌다가 억지로 정신을 수습해 먼젓번 놈을 옆으로 밀고 새 박을 골라 타는데, 아직도 제정신이 다 돌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북 남원시 아영면 성리 들머리에다 흥부 발복지를 알리는 표지로 앉힌 흥부부부. 누더기를 걸친 채 작은 웃음을 나란히 머금고 있다. 옆에는 떡 벌어진 채 안에 담긴 재보를 자랑하는 작은 박이 하나 있다.
오골오골 그 많던 ‘애새끼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데, 좀 더 큰놈을 골라 가운데다 놓고 몸체를 앞뒤로 흔들며 슬근슬근 오가는 톱질이 여유롭다.
남원에는 오래전부터 흥부전과 비슷하게, 짝없이 인색한 부자 형 박첨지와 가난하지만 부지런하고 착한 아우 박춘보가 있었는데 나중에 부자가 되어 쫄딱 망한 형네를 거두고 이웃에도 착한 일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성리는 박춘보 흥부가 박첨지 놀부한테 쫓겨나 삼남 각지를 떠돌다 허기로 쓰러져 있는 것을 동네사람들이 흰죽을 먹여 살려냈다는 동네. 흥부는 여기서 새끼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고 받은 박씨 덕분에 운수대통한다.
실제 성리에는 흥부집터였다는 복덕촌과 발복터인 고둔터.허기져 쓰러진 허기재.흰죽을 먹여 살려낸 흰죽배미 등 고전소설이나 판소리에 나오는 땅이름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노디막거리.장구목.새금모퉁이.구름다리장터.화초장거리도 흥부전에 이름이 나온다.
또 흥부참샘이라고, 흥부가 손수 팠다는 샘물은 겨울은 김이 나도록 따시고 여름에는 내장이 시리도록 차단다. 동네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모두 마셔보라고 권하는데 한 모금 머금으니 생각 때문인지 달콤한 맛이 혀 끝에 전해진다.
마을 뒤쪽에는 흥부 박춘보 부부의 무덤이 있다. 원래는 발복 명당이라 해서 여기저기서 마구 무덤을 쓰는 바람에 자취도 뚜렷하지 않았으나 최근 고증을 거쳐 새롭게 꾸몄다는 것이다. 맞은 편에는 새해 정월 초사흘마다 흥부 추모제를 지낸다는 망제단 터가 있다.
하지만 성리가 흥부마을이 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인월면 성산리와 아영면 성리가 서로 흥부고향이다 아니다, 톱질하듯 살근살근 실랑이를 벌이다가 박 쪼개기처럼 성산은 출생지, 성리는 발복지 하는 식으로 나눠가진 게 1992년.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의 고증을 거친 게 이때인데, 성리는 박춘보 추모제를 지내고 성산리는 박첨지를 위해 제사를 모신다.
성리엔 박이 주렁주렁 달려 있으리라 짐작했는데 별로 그렇지 않다. 하도 많이 물어 대서 보기 좋으라고 심긴 심었는데 “가뭄에 꼬실라지고 장마에 썩어부러” 지금은 거의 안 남았단다. 하지만 동네 어귀 물레방아 둘레에는 채 여물지 않은 박이 10개 남짓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시골 정취는 아이들과 함께 충분히 느낄만하다. 도로에서는 나락을 펴 말리고 있다. 다른 마을에는 잘 없는 바깥마당이 그냥 남아 콩꼬투리를 두들기는 할머니의 쇠도리깨질을 고스란히 견디고 있다. 담장에는 박 대신이요, 하는 표정으로 호박이 꽃을 피웠으며 흙담장 허물어진 곳에는 시멘트블록도 없지 않다. 또 동네 어른들은 오가는 발걸음이나 바삐 놀리는 일손도 멈추고 묻는 게 반갑다는 듯 웃음 띤 얼굴로 이것저것 일러준다.
갈대는 아무 데나 널려 있고 곳곳에 심어놓은 밤나무 아래에는 그대로 팽개쳐 놓은 듯 알밤이 수북하다. 아이들은 불어오는 바람만으로도 깔깔거리고 보랏빛 달래꽃에도 신기해 한다. 흥부가 전해주는 푸근함과 농촌마을의 넉넉함이 어우러지는 흥부마을이다.



▶가볼만한 곳

흥부제는 흥부마을에서 열리지 않는다. 문화예술회관이 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남원 시내 한가운데서 열린다.
물론 흥부마을 터울림이라고, 길놀이쯤에 해당됨직한 여는 마당은 흥부가 태어난 인월과 복을 받은 아영에서 벌어진다. 하지만 이는 본행사와 뚝 떨어져 있어 경상도 외지 사람은 물론 전라도 토박이들도 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어떠랴. 어쩌면 흥부마을에서 흥부제 열리지 않는 게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는 이도 별로 없는데다 다들 가을걷이하느라 바쁜 터에 사람들 몰려들어 들쑤셔 놓는 게 썩 좋은 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올해 흥부제는 24일 터울림에 이어 주말인 27일과 28일 크게 한 판 벌어질 모양이다. 주말이면 넉넉해질 수도 있지 않은가. 마산이나 진주에서 버스에 몸을 싣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발복(發福)을 꿈꾸며 즐겁게 다녀오거나 자동차를 손수 몰고 가도 나쁠 것은 없을 듯하다.



▶찾아가는 길

흥부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가장 간단하기로는 찾아가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88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것이다. 마산.창원에서는 서마산 나들목을 거쳐 남해고속도로로 가다가 서진주에서 대전~통영 고속도로에 얹는다. 진주에서는 곧바로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타면 되는데 모두 함양 수동 나들목을 지나 88고속도로로 옮겨 타면 된다.
88고속도로에서 대구 말고 남원쪽으로 들어가 15km 남짓 달리다가 지리산 나들목으로 빠져나오자마자 왼쪽으로 튼다. 아스팔트 1차로 1084번 지방도로가 이어지는데 아영면 소재지에서 다시 좌회전해 2km 정도 가면 성리마을 흥부 발복지가 길손을 맞이한다.
국도로 가려면 마산에서 2번 국도를 타고 와 진주에서 3번 국도로 옮긴 다음 함양에서 다시 24번 국도로 바꿔도 된다. 아니면 서마산 나들목으로 들어와 의령 나들목에서 빠져나간 다음 20번 국도로 대의고개를 넘어 산청 단성에서 3번 국도로 합류해도 괜찮다.
3번 국도에서 갈아타고 함양에서 남원으로 가는 24번 국도는 오봉산을 지난다. 오봉산을 지나면 곧바로 전라도 지경인데 내리막 고갯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타나는 마을이 바로 흥부의 출생지인 인월면 성산마을이며, 성산마을에서 인월면 소재지를 거쳐 88고속도로 지리산 나들목까지 가서 오른쪽으로 휘어지면 아영면 소재지를 지나 성리마을로 가는 길을 만날 수 있다.
남원 가는 대중교통편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마산합성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오전 6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여섯 차례 차편이 있고 오후에도 1시 15분부터 5시 10분까지 다섯 번 차가 나간다. 진주에서는 오전 6시 13분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20~30분 간격으로 버스가 연방 다닌다. 남원 시내에서 인월면 성산리나 아영면 성리까지는 시내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길가에는 곳곳에 흥부 관련 표지판이 서 있어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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