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셋째주 일요일, 도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있다.

박영주(문창문화연구원 사무국장)·이화동(사진작가)·송창우(시인)·심경애(회사원)·김정미(회사원)·이상범(취업준비중)·김성훈(대학생)·윤유경(회사원)·장혜정(자영업)·한동규(대학원생)씨 등.

이들은 걷기로 정해진 날에 개인 사정으로 빠지기도 하지만 ‘걷는다’는 맛에 매료된 사람들이다. ‘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유행가 가사처럼 그냥 산보삼아 마음에 맞는 이들끼리 걷기 시작한 지 3개월쯤 됐다.

뚜렷이 왜 걷는지도 모르고 걸었다. 그러나 이젠 걸으면서 무언가 해야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걷고 있는 도로의 문제점도 많이 발견했다. 마산 산복도로(고운로)의 경우 마산여고·제일여고 등 학교가 밀집한 지역인데 인도가 거의 없다. 인도가 있다해도 너비가 한 10㎝ 정도 될까. 들쭉날쭉하고 그 좁은 인도마저 차를 대놓아 차위를 밟고(·) 지나지 않으면 안된다. 모두들 생업에 바빠 오가는 차를 피하고 주차된 차를 비켜가는 불편을 감수하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단지 산복도로만이 아니라 마산 전역이 다 그렇다. 신마산 월영아파트단지는 최근 지은건데도 인도가 굉장히 좁다. 두 명이 서서 나란히 걷기가 힘들다. 걷는 이들에 대한 배려없이 건축했기 때문이다.

또 3·15탑 근처 몽고정 옆 철로밑은 인도가 단절돼 있다. 도로정책의 무신경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도 걷는 사람을 위한 도로정책이 완전히 무시돼 있다. 반드시 지하도로 건너야 차도를 건널 수 있고 건널목도 너무 멀다.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장소는 이동거리를 짧게 하고 시간을 단축시키는 의미에서 지하도와 횡단보도가 같이 있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시외버스터미널을 이용하려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지하도로 아예 건너갈 수도 없게 돼 있다.

도시 뿐 아니라 외곽지역도 인도의 사정은 마찬가지다. 굳이 포장하지 않아도 될 길을 포장해 보행자는 논으로 비켜가야 한다. 그리고 도로에 있어야 할 시설물(승차권 판매소·전화부스·버스정류소·도로표지판 등)이 인도에 있어 보행자 정체현상을 빚기도 한다.

‘걷는 사람들’은 그들이 느낀 부분을 일반 사람들에게 수긍이 가도록 인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자동차도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사람도 자동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점점 더 서로 적대 관계에 놓이고 있다. ‘걷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자동차와 보행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도로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차를 타고 다니면 그뿐이지, 보행권 같은 게 뭐 필요해·’라고 지레 짐작하는 이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차없이 100m만 걸어보면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자동차 중심의 도로정책을 펴서 인도를 줄여가며 자동차를 위한 도로를 만들어놔도 자동차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걷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는 ‘걸어야 한다’가 아니라 ‘걸을 권리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걷는 것의 장점은 걸으면서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고, 주변의 역사를 소중히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길러진다는 점이다. 버스를 탈 때는 왜 불편한 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도 커다란 수확이다.

2년전 ‘걷는 사람모임’을 처음 생각한 박영주씨는 “보행권 주장이나 도로환경 개선문제는 다른 시민단체에서 어련히 잘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경남지역만 ‘보행권 확보’운동 네트워크가 없었다. 다른데서 안하니까 우리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며 “보행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민들의 자각이 필요하고, 도로행정 관련기관의 문제의식 갖기, 시민단체와 연계한 보행권 확립, 인터넷을 통한 보행권 정보 알리기 등 다양한 작업이 필요할 겁니다. 지금은 시작단계여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질지 얘기하기가 힘들고, 매월 한번씩 코스를 정해 걸으면서 도시에서의 보행권, 도로와 환경 등에 대해 느끼고 토론하는 절차(소세미나)를 계속 가질 생각입니다”라고 말한다.

경남대 건축학과에 재학중인 한동규씨는 “평소에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그런 생각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줘서 이 모임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번을 계기로 조금이나마 건축가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민의 입장에 서서 우리의 거리문화 활성화와 보행자위주의 거리만들기에 보탬이 되고싶다”고 밝힌다. 고무적인 일이다. 이 모임에 우리나라의 장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이 참여해 동감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걷는 사람들’은 한번 걸을 때 보통 8~10㎞씩 걷는다. 사진도 찍고, 도로가 ‘걷기에 너무 불편하게 돼있다’고 투정도 부리면서 무작정 참여해온 10여명의 참가자들에게 이젠 걷는 목적이 생겼다. ‘보행권 확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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