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간직한 '홍화집·골목식당' 입맛 까다로운 문화예술가 단골

빛바랜 간판이며 여닫이 알루미늄 문까지. 마산합포구 중성동 한국투자신탁 맞은편 좁은 골목길을 들어서면 시간이 걸음을 멈춘 듯하다.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창동, 오동동, 중성동 골목은 지금의 경남도청과 창원시청 인근식당을 방불케 했다. 경남은행 본점, 법원, 한일합섬, 수출자유지역의 직원들까지. 점심, 저녁 할 것이 없이 불야성을 이루던 곳. 30년 전 기억을 지금도 안은 곳 중 하나가 바로 중성동 골목이다. 유일하게 홍화집과 골목식당이, 일흔을 바라보는 주인 어머니들이 그 명성을 잇고 있다. 사람들의 발길은 많이 끊어졌지만, 그 당시 함께했던 손님들이 단골이 되어 또 다른 손님을 데려오면서 명맥을 이어오는 곳이다. 

   

   

"홍화야, 소고기 국밥 하나 해놔라. 내 지금 간다."

주인장 최경주(64) 씨. 환갑 넘긴 지가 4년이 다 되어가지만, 단골손님들이 칭하는 어머님의 호칭은 '홍화'다. 그도 그럴 것이 '홍화집'을 찾는 단골손님들의 평균 연령은 여든에 이른다. 동서화랑 송인식 관장부터 몇 년 전 고인이 된 화가 변상봉 교수까지. 30년 가까이 인연을 맺어온 이들 사이에 어머님의 호칭은 어머님의 화사한 표정을 닮은 '붉은 꽃', 가게의 이름을 딴 '홍화'다.

그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담는 홍화집. 들어서자마자 "딱딱" 전기모기장 소리가 먼저 맞았다. "붕붕" 30년을 말없이 버틴 오래된 선풍기 소리도 들렸다.

한쪽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화이트 보드가 메뉴판이다. 소고기국밥, 비빔밥, 양곰탕은 6000원이요, 소 수육과 육회는 작은 것 2만 원, 큰 건 3만 원이다. 단골 어르신들의 입맛을 맞추다 보니 메뉴도 맛도 그에 따른다. 특히 예술가들의 발길이 유난히 많다.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들이요, 오랜 세월 입에 안 대 본 것이 없는 어르신들이다. 입맛을 만족시키려면 어쨌든 맛이다. 소고기국밥엔 부드러우면서도 큼직한 국내산 소고기만 쓰는 것도 이 때문이란다.

해가 기울면 술 한잔 그리워 찾는 이들의 발길이 잇따른다. 홍화집은 20년 전부터 '통술'을 해왔다. 애초 통술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단골 어르신들의 요구를 하나 둘 맞추다 보니 어느새 통술집처럼 음식이 푸짐해진 것이다.

삼삼한 찐 생선, 깔끔한 탕국, 아삭한 육회 등이 오르는 술상은 푸짐하면 4만 원, 고만고만하면 3만 원이다. 술 한잔 제대로 하고 싶다 하면 4만 원짜리, 좀 먹고 왔다 하면 3만 원짜리로 차린다 했다.

이곳을 찾으면 눈을 뗄 수 없는 사진이 여럿 걸려있다. 단골손님이자 사진작가인 이영기 씨의 작품. 음란하다기보단 이야기를 만드는 누드작품이다. 홍화집에선 이 작품뿐만 아니라 어머님께 선물로 남긴 20여 개의 다른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잊지 못할 단골손님, 고 변상봉 교수 역시 3년 전 이곳에서 마지막 개인전을 열었다. 부인의 병간호를 하다 자신의 병을 발견한 그는 그렇게 손 쓸 틈 없이 세상을 등졌다.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떠나보내 너무 미안해. 단골손님들도 여든, 아흔이 다 되어가니 그런 소식이 이래저래 들릴 때가 가장 마음이 아파. 한동안 안 온다 싶으면 걱정도 되고. 그렇게 걱정하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면 또 어찌나 반가운지. 단골손님들 때문에 나도 여기 있는 거지."

   
 
   
 
 
홍화집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골목식당. 이 식당 또한 30년 동안 이 골목을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지켜왔다. 생선회부터 각종 생선국까지 했지만 지금은 아귀탕, 대구탕, 탱기탕, 추어탕을 파는 생선국 전문점이 됐다.

새벽에 장을 보고 음식에 소금은 안 쓴다고 했다. 대신 직접 담근 조선간장으로 맛을 낸다고 했다. 아귀탕 국물이 시원하면서도 깔끔했고 나오는 반찬 또한 삼삼하면서도 간이 은근히 배어 있는 이유, 바로 조선간장 때문이다.

"이제, 나이가 많아서 식당 하기가 어려워. 환갑만 돼도 화끈하게 해 보겠구먼."

주인 어머님은 일흔, 함께 거드는 아버님은 일흔여덟. 30년간 일하며 딸, 아들 결혼시켰고 살림도 꾸렸다. 자식들 크는 것 본다고 정신없이 살아온 탓에 정작 본인의 몸은 생각지 못했다. 건강이 여의치 않은 탓에 오래 못할 것 같아 오는 취재전화도 마다한다고 했다.

세월의 무상함도 무던히도 견뎌낸 골목길. 그나마 남아있던 사람들마저 조금씩 이야기 속으로 사라져간다. 더 늦기 전에 골목의 정취와 낭만, 사람이야기를 지금이라도 지켜내야 할 텐데. 아쉬움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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