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껍질로 만든 옷 '무더위 훌훌'

지난주에는 하동 적량면의 깊은 산 숲에서 예비 생태해설사님들과 한나절을 보냈습니다. 슬로 시티를 내걸고 생태 숲을 조성한다는 계곡에서 야생 사슴들처럼 나뭇잎을 뜯고 먹어보고 냄새 맡으며 우리 안의 자연성을 불러내서 함께 어우러져 보았습니다. 도시 속에서 지친 몸들이 산 숲에만 들어서면 물 속의 풀잎처럼 팔팔해져서 신나는 사람들을 보면 이 동화의 세상을 아이들에게 꼭 물려주고 가야지 하는 열정으로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반자연적인 정복자의 자세에서 포유류의 한 종인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함께 매미소리 계곡 물소리에 혼신을 맡겨두고 우리처럼 제 특성에 따라 지어진 재미난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 주었습니다. 비목·청미래·고로쇠·사위질빵·며느리밑씻개·짚신나물·모시풀. 길목에 무성하게 자라 이파리 흔들며 반기던 모시풀,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모시풀

잎이 아직 무성한 걸 보니 이 동네 사람들은 모시풀 해먹을 줄 모르나 보다 했습니다. 이맘때쯤이면 사람들이 따다가 떡 해 먹는다고 모싯대 줄기만 남아 있을 때였으니까요. 쐐기풀과의 모시풀은 우리 조상들에게는 하늘이 준 귀한 은인초였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저마·저마포'라고 속껍질로 만든 천으로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 줄 뿐만 아니라 그 희디흰 모시옷의 아름다움 또한 나비를 연상시켰답니다.

잎이 나오고 뒷면이 하얗게 털이 무성해지면 따서 삶아 떡을 만들어 먹습니다. 쑥보다도 짙고 맛있는 향을 가진 모시떡이 요즘은 귀한 특산물로 통신판매망을 타고 전국에 팔려 나가기도 하는데요. 옛날 생각이 나서 하나 시켜 먹어 봤더니 색깔은 그 그리움을 다 담고 있는데 맛은 그 향이 없었습니다.

잎이 세어지면 따서 말려 두었다가 냇가 멱감으러 갈 때 비벼서 귀마개로 쓰기도 했습니다. 잎 뒷면의 하얀 솜털이 귀에 물들어가는 것을 잘 막아주었으니까요. 가끔 할머니들은 잘 자란 모싯대 속껍질을 벗겨서 모시를 삼기도 했는데요. 우리 지역에서는 모시보다는 삼베를 주로 많이 짰기 때문에 모시 삼는 걸 본 기억은 아주 희미합니다. 눈부시게 희고 가는 모시베와 적삼에서 맡았던 할머니 냄새가 모싯대를 바라보는 마음에 잔잔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모시풀의 재주는 이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뿌리는 또 약용으로 많이 썼다고 합니다. 하혈·충독·이뇨·통경·해독·지혈제 역할을 했다는데요. 요즘은 당뇨병 치료제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풀잎과 뿌리의 향으로 해충을 쫓을 뿐만 아니라 독을 해독시키기도 하는 것이지요.

특히 항암성분이 있다고 하여 현대 의학에서 연구 중이라는데 '항신장암제'로 그 효용이 입증되고 있다 합니다. 자연을 만든 조물주가 인간 역시 만들었습니다. 만든 자는 그것을 살리는 것도 알기 마련이지요. 자연을 살리고 함께하는 것이 우리 몸을 살리는 길임을 숲에 가면 더 깊이 깨닫습니다. '숲은 의사 없는 병원'이라는 말 풀꽃 하나하나가 가진 효능을 떠올리며 더 귀하게 보존하고 잘 활용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안고 돌아오는 발걸음 행복했습니다. 제게 사위질빵 화관을 만들어주신 악양의 귀농농부라 소개하신 모시풀 같이 후덕한 선생님 정말 아름다운 선물 고맙습니다.

/박덕선 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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