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풀빛마당 작은 음악회' 여는 문진옥 씨

TV인지 영화인지 모르겠다. 한창 감수성 풍부한 여고시절 그쯤? 지금 생각해도 홀로 가슴이 쿵쾅쿵쾅 하는 멋진 프러포즈 장면을 본 게.

두 팔 벌려 안아도 잡기 힘들만큼의 안개꽃다발이 발 달린 채 두둥실 여자 앞으로 걸어온다. 토끼눈이 된 여자 앞에 멈춰 선 안개꽃 뒤로 잘생긴 남자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고개를 삐죽 내밀며 꽃다발을 건넨다. 여자는 행복한 표정으로 안개꽃에 고개를 파묻는다. 그리고 화면은 안개꽃으로 가득 찬다. 안개꽃 뒤에선 남녀의 아름다운 Kiss~(발그레).

▲ 풀빛마당 안주인 문진옥 씨

창원 봉림동의 ‘풀빛마당 작은 음악회’에서 우연히 그 기억을 끄집어 냈다. 안개꽃 같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풀빛마당의 안주인 문진옥 씨. 풍성(?)하고 하얗고 쑥스러운 미소가 순수한 안개꽃의 느낌을 연상케 한다.

먼저 ‘풀빛마당 작은 음악회’를 소개해야 순서가 맞겠다. 작년 6월에 1회를 시작으로 한 달에 한번 둘째 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봉림동 주민행사다. 한 블로거의 소개글이 경남도민일보 지면에 실리면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 후 마산MBC <좋은 아침>, KBS <생생투데이> 방영되면서 대전 등 외지에서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난 17일은 12회 행사로 1주년을 맞이한 날이다. 1주년 행사답게 평상시 모이는 사람의 두배가 모였다. 활기가 넘친다. 100여 명의 사람 모두 첫 만남에도 친숙하고 활짝 피운 꽃처럼 웃고 있다. 사람도 가지각색, 표정도 수천 가지일 텐데 이곳에선 모두 웃고 있다. 음악이 나눔이 꽃이 사람을 하나로 만든 모양이다.
 
문진옥 씨도 그 중 한 사람. 수다 내내 도랑으로 얘기가 자꾸 새지만 재밌다. 기사에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살짝 고민되게 하기도 한다. “그냥 알아서 하세요. 이렇게 얘기해도 기사에 두 줄도 안 나갈 거 알아요. 상관없어요”하며 그저 웃는다. 이런 멘트까지 받아 적고 있는 걸 모르고 말이다(ㅋㅋ).

섬진강을 끼는 광양이 고향인 문진옥 씨는 중고시절 매일같이 섬진강의 물빛을 보고 꽃을 보고 바람에 머리 흩날리며 그렇게 등하교를 했다. “박경리가 왜 <토지>를 쓸 수밖에 없는지 알 것 같다”며 강물의 반짝임을 보면 아직도 설레고 눈물이 날 것 같단다. 보통 감수성은 아닌 듯하다.

여리디 여릴 것 같은 그녀에게도 1년 전만 해도, 그러니깐 풀잎마당을 운영하기 전까지만 해도 힘든 시절이 많았다. 또 15년을 넘게 아이들 공부방을 하며 오로지 아이들과 꽃만 접했지 이렇게 다양한 어른은 만날 기회가 없이 한정된 공간에 갇힌 생활이었다고 한다.

“바깥세상은 전혀 몰랐어요. 아이들, 꽃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성인을 대하는 게 무서웠죠. 하지만 ‘작은 음악회’를 통해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니 그 마음은 아이들과 같더라고요. 순수하고 맑고 만만하고…. 여기 오신 분들 다들 너무 좋은 사람들이에요.”

인터뷰 중간 중간 ‘누구씨’ ‘누구씨’ 부르며 같이 이야기하게끔 유도한다. 그런 모습이 이젠 너무나 자연스럽다.

남편과는 경남대 캠퍼스 연인이었다. 당시 교내에 있었던 의자 10개도 채 안 되는 작은 문학 카페에서 만나 남편의 적극적 구애에 결혼하게 됐다. 하지만, 결혼 3개월 만에 문진옥씨는 신장 결핵을 앓아 누워서 혼자 뒤집을 수조차 없었다. 남편은 1년을 넘게 극진히 간호했다. 방에선 환자냄새가 안 날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 둘째아이를 낳을 때까지 목발 짚고 온전하지 못한 아내의 손과 발이 되어 주었다. 그 정성 때문인지 어느 날 갑자기 신기하게도 몸이 완치되었다. 이런 남편의 사랑을 알기에 거듭되는 사업실패로 힘든 시기에도 믿음으로 견딜 수 있었단다.

“혹시 어떤 사업을 하셨나요?” 조심히 묻자 풀잎마당 직전의 사업은 얘기 않고 1986년도 얘기를 한다.

“경남대 앞에서 1986년부터 3년 넘게 ‘대학서림’이란 서점을 운영했어요. 당시 학생들 데모가 많았잖아요. 이곳이 학생운동하는 사람들의 아지트가 됐죠. 도망 다니다 갈 곳 없는 사람들 쉬고 밥 먹는 곳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망할 수밖에 없었어요.”(웃음)

그럼 때론 후회할 때도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누구나 결혼해서 그런 생각쯤 한 번씩 하지만 어느 순간 왜 우리가 부부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며 지금은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한다. 남편 또한 이제야 자기 옷을 입은 것 같아 보인다고 말한다. 흙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음악 좋아하는 남편의 마지막 자리가 여기인 것 같다며 표정이 편안해진다.
 
“5만 원만 있으면 제일 행복해 하는 사람이에요. 참 부럽죠. 항상 만원만 만원만 그래요.”

수다를 너무 오래 떨었나. 무슨 인터뷰를 그렇게 오래하느냐고 주위에서 성화다. 농담인 줄 알지만 음악회를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눈을 돌려 무대를, 참여하는 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봤다. 어찌 된 것이 모두 환한 안개꽃 같다. 왠지 이들에게서 안개꽃 프러포즈를 받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기분이 묘하다. 요즘은 안개꽃 자체로도 각광받고 있지만 안개꽃은 장미나 카네이션 등을 한층 돋보이게 해준다. 여기 모임 사람 모두가 그렇게 서로를 돋보이게 해주는 것 같다.

다음 달 14일 저녁 7시 안개꽃 프러포즈를 받아보는 건 어떨까? 내가 안개꽃 프러포즈를 다른 이에게 할 수 있어도 얼마다 좋을까? 강추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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