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생활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이 담을 그릇이다.

요즘은 도자기를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좋은 그릇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비싼 그릇은 많은데, 그릇으로서 제 기능을 하는 가치 있는 그릇도 만나기 어렵다.

물론 도자기를 하는 사람들조차 자신의 작품이 도기인지 도예인지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다분히 작품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고 언감생심 좋은 작품을 기대하기는 더욱 없다.

어차피 그릇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도예도 도기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하면서 만들어진다면 명품 중의 명품이 될 것이다.

그릇은 모름지기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사람이 먹는 음식을 담고자 만들어진 도구다. 그렇다면, 그릇은 음식을 중심으로 만들어져야 그릇으로서 생명력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식생활 고려않는 도공 많아…맞춤형 용기 구하기 어려워

만약 음식을 담지 못하는 그릇이라면 감히 도자기라는 이름을 붙이기보다 공예품이라 해야 할 것이다. 도자기를 하는 분들이 그릇을 만들어 놓고 어떤 음식이든 담아도 좋다는 식이라면 고객을 기만하는 것이다.

최소한 도공이라면 내가 어떤 음식을 위해 이 그릇을 만들었는지,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국그릇을 만들 때, 냉국이냐 더운 국이냐에 따라 그릇의 두께, 주둥이의 넓고 좁음을 달리해야 한다.

입을 대고 마실 그릇이냐 음식을 떠먹는 그릇이냐에 따라 입술이 닿는 면을 달리하고, 떠먹는 그릇이라면 수저질 할 때 그릇 주둥이의 넓이 바닥의 깊이로 수저 각도가 맞아야 음식을 먹을 때 그릇 바닥 긁는 소리가 안 난다. 그리고 음식을 끓이는 뚝배기 같은 그릇은 내열성과 열의 보존성이 있어야 한다.

한편, 그릇은 발효가 필요한 김치·된장·간장은 당연히 그릇에 숨구멍이 있어야 하지만 일시보관을 요하는 밥은 유기그릇과 같은 숨구멍이 없는 그릇에 보관해야 밥이 변질하지도 않고 맛이 있다. 그릇은 음식의 색·모양·향·맛·온도·계절·식행위·문화를 고려해 차별화하여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필자는 아직도 그런 도공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우선 도공들이 식생활문화에 대한 기본적 공부도 안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손재주에만 능한 것이 아쉽다.

예술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좀 더 그릇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도기는 그릇의 기능을 하지 못하면 아무리 예술적인 가치가 있다 해도 그것은 이미 도기가 아니다.

뚝배기 하나를 만들고자 평생을 바쳐 연구해오던 선인들의 혼에 장맛이 우러나듯 오늘날 그런 도공들을 만나고 싶다.

/김영복(식생활문화연구가·미국 캘리포니아주 ASU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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