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공연 날 '비보'…90년대 경남관악 르네상스

30주년. 믿어지지 않는 숫자다. '통합 창원시'라. 또 한 번 강산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마산관악합주단을 창원윈드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꿨다. 올 12월 9일은 30주년 기념 음악회를 꾸릴 것이다. 창단공연 날 고인이 된 '오호걸' 해군군악대장의 뜻을 이어받은 지휘자들과 그간 거쳐 간 단원들을 한자리에 모아 30년 전 그때를 떠올리리라. 지역 음악인들의 기억을 통해 '관악 르네상스'였던 그때의 경남을 회상한다.

◇1970년대-경남 관악의 토양 '진해해군군악대'와 '브라스밴드'

#1 "해군군악대가 거리행진 합니더, 얼른 나와보이소"

진해해군기지사령부 군악 연주./경남도민일보DB

내 나이 9살. 진해는 해군군악대의 발걸음 소리만 나면 동네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나팔소리는 머리카락을 쭈뼛 세웠고 큰북소리는 가슴 깊은 곳을 두드렸다. 언젠간 저 속에 내가 있으리라. 그렇게 바라던 꿈은 고교생이 돼서야 이뤄졌다. 그렇게 원하던 악기, 튜바가 내 앞에 놓였다. 악기에 얼굴이 비쳤다. 잇몸까지 환하게 드러내고 웃는 내 모습이 보였다. (현 안병삼 창원시립교향악단무장)

#2 "'브라스(금관악기를 지칭) 밴드'에 들어갈 겁니더. 저, 마산상고 보내주이소."

초등학교 다닐 때 유일한 낙은 '리듬합주부'였다. 맑은 트라이앵글의 소리, 가녀린 피리의 울림, 빗물이 유리창을 치듯 상쾌한 작은 북소리. 내 어린 시절엔 꿈속에서도 합주부가 함께했다.

집안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음악을 놓고싶진 않았다 유일한 방법은 밴드부가 있는 학교에 들어가는 것. 부모님의 반대에도 '브라스 밴드'의 명문 마산상고(현 용마고)에 원서를 넣고 합격했다. 3년 후 경남의 유일한 음악과였던 경남대 음악교육과에 입학했다. 눈에 익은 얼굴이 많았다. 마산공고, 마산삼진고 등 마산지역 고등학교의 브라스밴드 출신들이었다. (현 김호준 마산음악협회장)

◇1980년대-군악대장 '오호걸', 후배에게 뜻 남기고 지다

"고교에 밴드부도 있고 대학생, 대학졸업생도 있는데, 이제 관악합주단 만들어서 체계를 잡아보는 건 어때?"

경남에 시립교향악단이 만들어지기도 전인 1980년. 진해해군군악대장이자 경남대 음악교육과에서 강의를 했던 오호걸 씨가 '관악합주단 창단'을 제의했다. 이동호(현 제주도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씨 등 제자들이 경남의 관악연주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색소폰은 당시 밤무대를 휘어잡고 있던 이들에게 제의했다.

오 씨의 지휘 아래 3개월 동안 땀 흘려 연습했다. 미안한 마음에 오호걸 지휘자는 연습이 끝난후 학생들에게 종이승차권 두 장을 손에 꼭 쥐여주었다.

1980년 6월, 드디어 기다리던 창단연주회 날. 40여 명의 단원의 얼굴엔 기쁨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연주시각은 다가오는데 오호걸 상임지휘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수소문하던 중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호걸 선생님께서 비탈길에서 추락하셨습니다."

연습 때마다 진해에서 마산으로 장복산 좁은 흙 비탈길을 무거운 지프를 끌고 왔다. 41세. 한창나이였다.

다음해인 1981년 1월, 고인의 뜻을 기리는 '오호걸 상임지휘자의 추모음악회'로 창단연주회를 대신했다.

고인은 갔지만 그 뜻은 이어졌다. 제2대 이동호 지휘자(현 제주도립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제3대 황용근 지휘자(마산삼진고교 교사), 제4·7대 최천희 지휘자(현 경남음악협회 회장), 제5대 이종만 지휘자(현 진주시립합창단 단무장), 제6대 윤병철 지휘자(작곡가), 제8대 나, 김호준(현 마산음악협회 회장)까지. 지금의 창원시윈드오케스트라를 지킨 이들이다.

◇1990년대-전성기 맞은 경남 관악

"색소폰 좀 배우고 싶은데…"

경남의 한 철강기업 간부가 색소폰 연주에 관심을 보였고 나에게 색소폰을 배웠다. 마산관악합주단 연습 때마다 찾아와 악기 나르기 등 '후보선수' 역할을 마다치 않았다.

어렵게 관악단을 꾸려가던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단원들의 식당을 정해줬다. 1990년 당시 1000만 원의 후원금도 내놓았다. 그때 500만 원에 달해 엄두를 못 냈던 팀파니를 구입했다.

그는 합주단 단원들에게 공연대관료와 팸플릿제작비는 평생 책임져 주겠다고 약속했다. 자발적인 지역 메세나의 효시였던 그 사람. 바로 경남스틸 최충경 회장이다.

90년 들어 진주, 창원에도 대학에 음악과가 들어서고 관악연주자도 늘어나면서 지역별로 관악합주단이 꾸려지기 시작했다.

진주·통영·창원에 관악단이 만들어졌고 양산에선 시립관악단도 꾸려졌다. 경남은 관악의 전성기였다.

◇2000년대-힘겨워진 관악, 그리고 사람들

90년대 후반 입시위주로 교육정책이 바뀌고 경제쓰나미 국제통화기금(IMF) 체제까지 덮쳤다. 마산인문계고등학교 합창단, 실업계 고교 브라스 밴드까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반별로 합창을 겨룰 만큼 번성했던 청소년 합창단은 입시의 걸림돌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학교의 자랑이었던 브라스밴드는 실업계 고교가 인문계로 바뀌면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대부분 겸업을 하고 있었던 관악단의 단원들 또한 경제위기까지 닥치자 어려움은 더 컸다. 어떤 이는 어렵게 카페를 꾸리며 연주회를 준비했고 어떤 이는 대리운전까지 겸해야만 했다.

10년 후. '브라스밴드'의 악기는 고교 창고 한 모퉁이에 먼지로 덮여있다. 양산시립관악단과 창원의 관악단은 그 이름도 잊혔다. 그러나 진주·통영의 관악단은 20년 넘는 세월을 꿋꿋이 그리고 말없이 지켜가고 있다. 마산관악합주단은 창원시윈드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꾸고 또다시 시작한다. 30년간 지켜온 40여 명이라는 숫자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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