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를 문 용이 품은 가을은…


와룡산은 삼천포의 진산이다. 와룡산은 상사바위와 새섬바위(795m)를 삼천포쪽으로 내밀고 있다. 정상인 민재봉(799m)은 새섬바위 북동쪽 너머 뒤편에 숨겨놓은 채.
커다란 용이 머리와 꼬리를 맞대고 둥글게 누워 있는 모양이라서 와룡(臥龍)이라는데, 이 가운데 70~80도 각도로 쭉 이어진 상사바위는 멀리서 보아도 장쾌한 느낌을 준다.
삼천포 죽림동의 남양저수지가 와룡산에 오르는 들머리다. 저수지 둑을 넘어 왼쪽으로 들어앉은 용주사를 왼쪽으로 버려두고 산등성이에 붙으면 고리샘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조금 더 위에까지는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이다. 물론 원불교 수련장 표지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오르면 거칠게나마 포장된 임도를 따라갈 수 있겠지만, 산길을 따라 가을맛을 보려면 초목이 양옆으로 우거진 오솔길이 마음에 더 들 것이다.
느끼건대, 와룡산 산행의 참맛은 호젓한 오솔길에 있다. 평소 사람이 많이 찾는 탓에 산길이 뚜렷하면서도, 나무와 풀이 길을 감싸고 있어 아주 아늑하다.
산꼭대기까지 곧바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뚫어버린 의령 한우산이나 길의 대부분이 지나치게 넓은데다 그림자 하나 드리고 있지 않은 황량한 창원 천주산은 아마 철쭉이 없었다면 제대로 눈길을 붙잡아 두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와룡산은 다르다. 나무가 그늘을 내려 놓지 않은 등산길이 거의 없다. 소나무가 길을 감싸기도 하고 밤나무와 참나무.상수리나무 따위가 길을 감싸기도 하고 때로는 허리나 어깨 높이에서 억새를 비롯한 풀들이 안아주기도 한다. 비탈길이 때에 따라 심한 곳이 없지는 않으나, 대체로는 그만그만한 기울기로 돼 있어 땀흘리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아직 단풍이 제대로 들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붉거나 노랗게 바뀌어 가는 나무 사이로 난 산길은 식구들끼리 또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도란도란 주고받는 얘기에 정감을 한층 더 얹어줄 듯하다. 또 가다보면 누군가 짓다 만 단감 과수원 사이로 길이 나 있기도 해, 바란다면 탱자보다 좀 굵은 단감 예닐곱 개는 따먹을 수도 있다.
40분쯤 오르면 도암재에 이른다. 무리를 지어 있는 억새와 산딸기나무가 반갑다. 왼쪽에는 새섬바위를 거쳐 민재봉에 이르는 길이 나 있고 오른쪽으로는 상사바위가 우뚝 서 있다.
상사바위 가는 길은 잡목과 풀이 무성해 더욱 호젓한 느낌이다. 뚜렷하게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왠지 쓸쓸해진다. 억새를 뺀 나머지 풀들은 푸른빛을 잃지 않았지만, 벌써 거의 잎을 다 떨어뜨린 나무들 사이로 멀리 바다가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왼쪽 새섬바위 가는 길은 한층 가파르고 2배 가량 길다. 비탈길을 따라 오르다가 너덜지대를 지나 40여 분을 가야 한다. 세섬바위에서는 남해 바다를 마치 좌우로 갈라 놓은 듯한 상사바위를 볼 수 있다.
상사바위 왼쪽으로는 삼천포항이고 오른쪽은 대방진굴항이 있는 쪽이다. 어느 쪽이나 다 잔잔한 느낌을 주지만 벼이삭 출렁이는 들판이 인상깊게 와 박힌다. 아마 누릇누릇 익어가는 가을철이어서 그렇고 군데군데 가을걷이를 마친 빈 들판이 아쉬워서 그런 모양이다.
여기서 민재봉까지 갈 것인지 여부는 선택 사항이다. 사실 산꼭대기에 올라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아닌 바에야 오순도순 오르면서 두런두런 얘기하다가 지치거나 힘들면 아무 데서나 다리품을 쉴 것이다. 또 적당한 데 자리를 잡고 자연을 어지럽히지 않고 알맞게 쉬다가 때맞춰 내려오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이달 27~29일에는 일대에서 와룡문화제가 열린다. 물론 거창한 행사가 따로 준비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동네 축제의 흥겨움은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삼천포시장이 4일과 9일 선다니 이 때를 맞춰 건어물과 조개.생선 따위를 장만하는 것도 괜찮겠다.


▶가볼만한 곳

와룡산을 내려와 사천읍.진주쪽으로 8km쯤 달리면 왼편으로 이어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왕복 2차선 국도에서라면 충무공의 동상이 버티고 있어 한결 찾기 쉽지만 왕복 4차선 국도라도 표지판이 크게 붙어 있어 어려움은 없다. 선진리 성 가는 길이다.
선진리 성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흙과 돌을 섞어 만든 왜성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려 때부터 조세를 거둬들이던 조창과 성이 있었다는 기록(동국여지승람)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서쪽만 바다와 붙어 있지만 당시는 동쪽을 뺀 삼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였다 하고, 지금도 기울기가 가파른 것을 보면 바다와 뭍을 잇는 거점 노릇을 톡톡히 했음 직하다.
선진리 성 앞바다는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이 처음 거북선을 출전시켜 이긴 곳으로 이름나 있다. 1592년 5월 29일 사천 선창의 왜군 13척을 꾀어낸 뒤 여기서 모조리 수장을 시킨 2차 사천해전이 그것이다.하지만 사천 일대는 정유재란(1597년) 당시 완전히 왜군의 손에 넘어간 선진리 성은 일본군이 쫓겨갈 때 마지막 거점노릇을 떠맡게 된다.근처에 조선과 명나라 장병들을 한 데 묻었다는 커다란 조.명연합군총은 당시 전투의 흔적이라 하겠다.
그래서
일제는 1918년 공원을 만들어 벚나무를 심고 한가운데에다 정유재란 당시 승전을 기념하는 ‘사천신채전첩지비’를 세웠으며 36년에는 고적으로 지정했다.
지금도 가운데에는 아름드리 벚나무가 마치 사열이라도 하듯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있고 바깥으로도 빙 둘러쳐져 있다.
물론 왜군의 기념비는 해방과 함께 깨어졌고 6.25 때 전사한 공군장병을 위한 충령비가 대신 자리잡았다. 78년 세운 ‘이충무공 사천해전 승첩비’도 들어서 있고 둘레에는 산죽이 무성하지만 전체적으로 벚나무에 갇힌 꼴 같아 보기 안쓰럽다.
그래도 성터에서 맞는 가을 바람은 여전히 싱그럽다. 나무 아래 긴의자에 앉아 보는 바다는 파도 하나 없이 잔잔하다. 성을 둘러싼 일대는 자동차를 타고 돌아볼 수도 있다. 횟집이 촘촘하게 붙어 있으니 와룡산 산행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러도 좋겠다.



▶찾아 가는 길

진주와 사천.삼천포 사이를 오가는 차편은 아주 많은 편이다.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8분 간격으로 이어지는데 진주~사천은 20분이면 되고 삼천포는 40분이 걸린다.
창원~진주 사이는 오전과 오후 각 3번밖에 없으므로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이용하는 게 좋다. 오전 6시 20분부터 오후 8시 35분까지 30~40분 간격으로 차편이 준비돼 있다. 걸리는 시간은 삼천포까지가 1시간 40분 남짓.
삼천포 터미널에서 와룡산이 있는 죽림동까지는 택시나 사천행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마산.창원에서 자가용 자동차를 타고 갈 경우는 남해고속도로를 타도 되고 신마산 경남대학교를 지나 국도 14호선을 따라가다가 고성으로 빠지지 말고 진주 가는 국도 2호선으로 옮겨 타면 된다.
남해고속도로를 탈 때는 사천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곧바로 직진해 달리다 보면 왼쪽으로 와룡산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곳곳에 보인다. 사남면에 있는 표지판은 무시하고 용현면을 지나 15km쯤 왔음직할 때 나오는 표지판을 따르면 된다.
국도로 가는 경우는 진주에서 3번.33번 국도로 옮겨타야 한다. 어려운 것은 아니다. 경상대학교 근처에서 진주로 빠지는 국도를 찾아 실으면 된다. 실제 거리는 비슷하지만 걸리는 시간으로는 고속도로가 빠르다. 하지만 고속도로 진입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때는 어느 쪽을 골라 가야 할지 망설여질 때가 많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