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해 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좀 막막했다. 외식에 걸맞은 음식 대부분이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불고기 양념을 준비한다 치면 간장, 마늘, 설탕, 양파, 키위 등 재료의 비율을 적당히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성분 비율을 섬세히 따질 줄 아는 화학자와 같은 능력이랄까.

간을 맞추거나 요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재료가 딱딱 몇 큰술이나 작은술이 들어가야 하는지 단숨에 알아차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을 보면, 요리 잘하는 사람은 수학에 능한 것 같기도 하다.
 

요리 솜씨가 어쭙잖은 총각 기자에겐 이런 능력들이 없다. 그러나 요리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돌파구(?)도 있다. 샤부샤부다. 샤부샤부는 준비하는 사람이 힘들게 정성을 쏟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함께 먹는 사람들이 살짝 익혀 제대로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샤부샤부는 원래 '살짝살짝' 또는 '찰랑찰랑'이란 뜻으로 일본 의태어란다. 그 유래를 찾으면 여러 가지 설이 나오는데, 칭기즈칸이 대륙을 넓게 차지했던 시절까지도 거슬러 간다. 전쟁이 빈번했기에 야전을 치르던 군인들이 투구를 벗어 거기에 물을 담아 끓이고, 근처에서 바로 가져온 양고기와 각종 채소를 익혀 먹었다는 것이다.

우리 음식 연구가들이 전통 요리법인 '토렴'이라는 방식에서 샤부샤부의 본디 꼴을 찾기도 한다. 밥이나 국수 등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따르는 걸 여러 차례 되풀이해 음식을 데우는 게 토렴이다. 마찬가지로 고구려 신라 백제의 전쟁으로 한반도가 떠들썩하던 시기, 군인들이 투구를 조리 도구로 활용해 챙겨 먹었다고 한다. 전쟁 도중에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 조금 더 맛깔스럽게 먹지 못한 까닭이다. 샤부샤부에 도전해봤다.

우선, 재료 준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장을 보러 갔다. 그런데 쇠고기가 너무 비쌌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믿기 어려웠다. 샤부샤부용 쇠고기가 100g에 무려 715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결국, 이것 대신 불고기용 소고기를 샀다. 불고기용 고기 역시 얇게 저민 상태라 살짝 익혀서 먹기에는 거북함이 없어서다. 불고기용은 500g짜리가 6350원. 샤부샤부용과 견주면, 알뜰한 선택인 것 같다.

채소를 사려고 자리를 옮겼다. 샤부샤부에는 온갖 채소를 넣을 수 있다. 표고버섯, 팽이버섯, 느타리버섯, 송이버섯 등 버섯을 다양하게 집었다. 소고기와 궁합이 맞는 재료들을 꼽으면, 버섯도 빠지지 않을 듯하다. 마음껏 골랐다. 여기서 채소의 신선도를 따지거나 친환경 농산물을 파는 곳을 찾는다면, 더 큰 복을 누릴 수 있다. 제철 채소를 듬뿍 넣어 즐겨도 기쁨을 더하겠다. 애호박, 배추, 숙주, 양파 등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샤부샤부에는 미나리가 제격이라 꼭 들어가야 좋다는데, 장을 봤던 장소에는 아쉽게도 미나리가 없었다. 재료는 모두 네 사람이 먹을 만큼 사들였다. 이 정도면, 장보기도 끝이다. 쇠고기 말고 낙지와 같은 해물 종류를 택해도 나쁘지는 않다.

샤부샤부를 두고 굳이 어려운 요리라고 할 수 있는 건 다름 아니라 육수 때문이다. 육수 맛이 요리 전체의 맛까지 좌우하는 게 샤부샤부의 특징이다. 아울러 육수를 끓이는 데는 대체로 시간과 공을 많이 들인다. 물을 받은 냄비에 다듬은 멸치와 자른 무와 다시마를 넣었다. 맵싸한 맛을 내려고 매운 고추도 두세 개 통째 넣었다.

여기에 양파와 대파를 곁들여도 된다. 이어 굵은 소금을 조금 뿌리거나 국간장으로 간을 해준다. 청주를 부어도 괜찮다.

주의할 점은 멸치 국물을 우려낼 때는 뚜껑을 닫지 않고 끓인다는 것이다. 비린내를 없애는 방법이다.

채소는 모두 깨끗이 씻고서 속이나 끄트머리를 걷어내면서 손질한다.

팽이버섯은 손으로 뜯어내고, 표고버섯, 송이버섯, 애호박, 대파, 양파, 두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거의 다 우러난 육수에서 무와 다시마 등 재료를 건져냈다. 육수가 어느 정도 끓으면, 가족을 위한 푸짐한 한 상이 벌써 마련된 거나 다름없다. 소고기를 비롯해 익혀 먹을 재료를 옆에다 놓고, 식구들을 불렀다. "뭐고? 전골 만들 거가?" 재료를 보더니 대뜸 물었다. 수줍게 답했다. "아니, 샤부샤부다." 바로 쓴소리가 나왔다. "찍어 먹는 것도 없노?" 깜빡했다. 팔팔 끓는 육수에 살짝 익힌 재료를 찍을 양념장을 미처 준비 못 했다. 진간장에 매운 고추를 아주 얇게 썰어 넣고, 고추냉이 소스도 조금 뿌렸다. 쇠고기를 찍어 먹을 수 있도록 소금과 참기름을 준비해도 된다.

육수가 살짝 스며든 채소와 고기를 한꺼번에 집어 소스에 살며시 버무렸다. 새콤달콤함이 입안에 감돌았다. 샤부샤부는 육수와 소스 맛이 관건이다. 아무리 익히는 재료들의 질이 좋아도 두 가지가 실패하면 맛을 보장하기는 어렵겠다. 고기와 채소를 익혀 먹고서 남은 국물에 칼국수나 라면 사리를 넣어 먹으면 포만감은 두 배가 되겠다. 국수 면발과 함께 마늘, 고춧가루, 배추김치를 총총 다져 넣으면 맛도 더 나아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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