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조용한 마을에 작은 마을 숲이 있다. 마을 앞에 수십 그루의 우람한 나무가 언제나 나를 포근하게 감싸준다. 숲에 대한 사랑은 옛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경남에는 하동 송림, 함양 상림, 남해 물건 방풍림처럼 이름난 마을 숲이 많다. 고성 마을 숲은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남해 바닷가 방풍 방조림은 조상의 지혜와 슬기를 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경남에서 이름난 마을숲

옛날 마을 숲 모습이 가장 잘 정리된 <조선의 임수>는 일본인 도쿠미츠 노부유키 씨가 일제 시대에 쓴 책이다. 김학범과 장동수의 대표적 저서 <마을숲>과 (사)생명의 숲에서 만든 마을 숲 책은 우리나라 마을 숲을 잘 정리해 놓았다.

이 책에서 경남의 대표적인 마을 숲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껏 남아 있는 곳도 있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숲도 있고 많이 망가져서 몇 그루만 남은 곳도 있다.

거창군 (갈계숲, 거창임수, 삼덕정), 고성군(장산숲, 우산숲, 두호 마을숲), 김해시(담안리숲, 산본리숲, 수로왕릉숲, 가락제방), 남해군(유림정, 남산숲, 초전수, 남면 당항리숲, 덕월리숲, 미조리숲, 송정숲, 물건숲, 상주숲, 서상숲, 원촌숲, 초음리숲), 통영시(수월마을숲), 마산시(삼풍대숲, 안봉대숲, 연풍대숲, 동림, 서림, 지산숲), 밀양시(구기리숲, 고례리숲, 긴늪숲, 삼문동 송림), 사천시(대곡마을숲), 산청군(산청임수), 양산시(황산언), 진주시(가정수, 청천임수, 대평수, 강남동 대숲), 창원시(동읍 신방리 포구나무숲), 하동군(하동 송림, 정서리 마을숲), 함안군(오동림, 죽림, 유림, 칠원임수), 함양군(대관림), 합천군(화달림)

남해안의 해안 숲

정리를 해 보니 남해군이 참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남해의 바닷가 숲은 언제 봐도 정말 멋진 명품이다. 남해 물건 숲은 태풍이 오면 언제나 그 가치를 인정받는 진정한 명품이다.

강력한 쓰나미에도 살아남은 동남아 지역에는 바닷가 맹그로브 숲이 있었다. 바닷가 마을 숲은 태풍이 아무리 몰아치고 해일이 와도 마을과 마을 앞 논을 보호해주며 태풍과 해일을 스펀지처럼 완충시켜주는 방풍림이고 방조림이다.

또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둘러앉아 놀며 쉬며 이야기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뱃길의 안전과 풍어와 풍농을 빌고 마을의 안녕과 무병장수를 비는 마을 동제를 지내는 신성한 신목이고 당산목이다.
남해안 바닷가 숲은 바다-해안-숲-논-마을-다랭이논-산으로 연결된 전형적인 마을 구조를 보인다.

진주산업대학교 김수희씨의 논문을 정리하면 남해안의 대표적인 바닷가 마을 숲은 다음과 같다.

통영시(신봉, 수월, 원산, 노산, 비진, 내지), 거제시(가배, 학동, 쌍근, 죽도, 한내, 덕포), 남해군(서상, 장항, 구미, 오리, 사촌, 홍현, 숙호, 신전, 원천, 상주, 백련, 망넘, 초전, 미조, 천하, 물건, 온점, 전도, 장항), 사천시(대방), 고성군(임포, 덕명)

고성의 마을숲

전국에서 가장 인물이 많이 난다는 고성은 명당이기도 하지만 마을을 명당으로 만들어주는 마을 숲이 많다. 풍수지리로 고성의 마을 숲을 연구한 윤재일 씨의 연구를 보면 고성에는 모두 54개의 크고 작은 숲이 있다고 한다. 좌청룡이 약하거나 우백호가 약하면 마을 숲을 만들어 기운을 북돋우고 마을 앞이 휑하니 드러나도 마을 숲을 수구막이로 만들었다. 마을 숲은 마을 전체에 안정감을 주고 정서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준다. 마을에 큰바람을 막아주고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준다. 큰 냇가 옆에 둑을 쌓고 마을을 보호하며 연못을 만들거나 바위를 놓기도 했다.

마산 진동의 동림과 서림을 찾아


일제 시대 조선의 대표적인 마을 숲을 조사한 <조선의 임수>를 보면 마산 진동에는 동림과 서림이라는 큰 마을 숲이 있었다고 한다.

진동에 살면서 한참을 그 마을 숲 흔적을 찾아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고지도를 보고 그 궁금점을 풀 수 있었다.

 

동림과 서림이 표시돼 있는 진해현(지금 마산 진동면 일대) 고지도.

1872년 진해현 지도인데 지금의 진동면, 진북면, 진전면 지역을 진해현이라고 불렀다. 진해현 중심은 진동면 사무소 둘레로 140m의 작은 성이 있고 그 성 양쪽에 동림과 서림이 있었다.

1872년 고지도에 나오는 진동면 동림과 서림의 현재 위치를 찾아보니 동림은 그 흔적이 아직 조금 남아 있다. 동림은 진동면 사무소 동쪽 태봉천 옆 혜창아파트가 있는 지역이다. 지금도 몇 그루 노거수가 축사 사이에 남아 있다. 동림은 남쪽 진동 바닷가의 남림까지 연결되어 태풍과 해일을 막아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서림은 그 흔적이 하나도 없어 찾는 데 애를 먹었는데 경남에서 가장 차가 많이 막히는 진동면 안의 중심 도로가 바로 서림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진동의 동림과 서림은 군사적 목적으로 만든 보루 울타리이면서 태풍의 강풍과 해일을 막아주는 훌륭한 방재시설이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세상

마을마다 들어가는 길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자라는 마을숲이 있었다. 둑방길에도 마을길에도 바닷가에도 강가에도 늘 생명의 숲이 있었다. 나무를 자르고 숲을 없애고 아스팔트 길을 내며 생명의 핏줄인 강을 난도질하고 마을을 돈으로 더럽혀 왔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불도저와 포클레인 덕분에 밥 세 끼는 안 굶고 살고 보릿고개도 없어졌지만 배고픈 몸보다 더한 마음의 허기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 마을의 작은 숲부터 찾아서 자연과 함께 살 수 있는 마음의 씨앗을 뿌려 가꾸어야 할 것이다. 내가 사는 마을과 고향의 마을 숲을 찾아보자.

/정대수(진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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