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먹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섭취해 건강한 삶을 오래 누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런 학문이 서양은 영양학(營養學, nutrition), 동양은 식의학(食醫學)이다. 그러나 서양 영양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대 식생활에 기본이 되는 반면, 동양의 식의학은 민간의학 또는 한의학의 한 부분으로 남아 그 존재조차 미미하다.

영양학 - 음식 3가지 주요 구성 요소 기반

우선 서양의 영양학부터 살펴보자. 1683년 영국의 의사 토머스 시든햄(Thomas Syden ham 1624 ~1689)이 우유와 빵으로 짜인 식이요법을 통풍환자에게 권하면서 시작된 영양학(dietetics). 1827년 영국 의사이자 화학자인 윌리엄 프로우트가 다량 영양소로 음식의 3가지 주요 구성 요소인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을 발견해 영양학(sitology)으로 발전시켰다.

18세기 말부터 A. L. 라부아지에에 의한 인체 내 에너지 발생 과정, 1824년 독일 화학자 J. 리비히에 의해 식품의 화학 분석이 시작되었다. 20세기 전반부에 5대 영양소가 모두 발견되고, 1950년대에 이르러 영양학(the science of nutrition)이라는 학문이 정립되었다.

식의학 - 체질 맞게 음식물 섭취 식이요법

동양에는 식의학(食醫學)이 있다.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는 말이 있듯이 의약과 음식의 근원이 같다는 뜻이다. 일단 병에 걸리면 대부분 사람이 약부터 찾게 된다. 그러나 약보다도 음식을 조절하거나 생활습관을 바꿔보는 게 더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 있다. 오늘날 상당수의 질병도 약보단 생활습관과 음식을 조절하면 치료될 수 있는 게 많다. 즉 음식도 약이라는 게 식의학이다.

전국시대 명의였던 편작은 어떤 병이든지 먼저 음식으로 고치도록 하되 치유되지 않을 때만 약을 쓰라고 했으며, 송나라 때 <태평성혜방>에서는 음식은 오장육부를 편안하게 하고 기분을 상쾌하게 하여 혈기의 순환을 도와주므로 음식으로 질병을 고치는 것을 양의(良醫), 즉 훌륭한 의사로 여겼다.

당나라 명의였던 손사막도 <천금요방>에서 의사는 마땅히 병의 원인을 먼저 살펴서 음식으로 고치되 그렇지 않을 때만 약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식치(食治)라고 정의했다. 한나라 말 의사 장중경은 음식의 여러 맛은 병을 낫게도 하고 도리어 몸을 해치기도 한다고 했다.

원나라 후비라이칸들의 어의였던 홀사혜도 식의(食醫)였으며, 홀사혜의 식의학이 고려로, 다시 조선조로 전승됐다. 홀사혜나 이시진(<본초강목> 저자)은 황제의 어의였고, 어의 중에서도 최고위 전의(典醫)가 바로 식의(食醫)였다.

우리는 고려시대 상식국(尙食局)에 왕과 왕족의 질병에 먹는 것에 대한 업무를 담당한 관직으로 정9품 식의(食醫) 2명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도 사선서(司膳署)에 정9품 벼슬인 식의(食醫)가 있었다. 전순의는 세조의 명을 받아 1460년 우리나라 최초 식이요법서 <식료찬요>를 편찬했다. 가난한 백성이 스스로 손쉽게 구하는 재료를 통해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하려는 거였다.

특히, 조선 고종 때 학자 이제마의 사상의학설은 체질의학 원전으로 각자 체질을 안다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식의학(食醫學)이 본초학(本草學)을 기초로 하지만, 사상의학설에 근거한 체질의학에 가까운 식의학(食醫學)은 인간 중심의 학문이다.

다만, 학문은 논리성과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식의학이 역사성과 임상학적 바탕을 두어도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면 학문으로 가치가 없다. 그러나 논리성과 과학적 근거가 있다 해도 영양학은 재료 중심의 학문으로 개인 체질과 관계없이 표준화 또는 계량화된 영양의 열량 위주 식단으로 비만과 성인병을 유발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반면, 앞으로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연구할 과제가 많지만, 동양의 식의학은 개개인 체질에 맞게 음식물을 섭취케 하는 식이요법으로 인간 중심 학문이다. 그렇다고 서양의 영양학을 비하하는 건 아니다. 서양의 영양학과 동양의 식의학이 융합을 이룬다면 인류에 크게 공헌할 또 하나의 학문으로 탄생할 것이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미국 캘리포니아주 ASU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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