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 것에 대한 식견과 소중한 가치를 얼마나 알까? 어쩌면 우리 것도 모르면서 남의 것을 더 아는 체하며, 얕은 지식을 뽐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우리 것에 대한 가치 창출보다 우리 것을 사라지게 하거나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 것은 고루하고 서양문화는 선진적이라는 사고에 매몰(埋沒)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5000년 역사의 나라가 지닌 전통문화에 대한 깊이와 가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일제 36년과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많은 전통문화의 자산을 잃어 버렸고, 친 서구 및 일본 지향적 지식인들에 의해 많이 사라졌다.

비록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 것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가치 창출을 해나가는 데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한글의 가열 동사 영어보다 3배 많아

우선 식생활문화를 연구하는 필자로서 우리 전통 식생활문화에 대한 가치를 논(論)해 보고자 한다. 한국의 환경적 계절의 변화와 역사성 말고도 한글의 문화 창조성은 한 마디로 놀랄 만하다.

한글이 식생활문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서양말의 뿌리인 희랍 말로 가열 동사는 '태운다'는 말 하나밖에 없다 한다.

특히, 세계인들이 제일 많이 쓰는 언어인 영어에서 가열 동사는 끓이다(Boil), 부글부글 끓이다(Simmer), 뭉근한 불로 끓이다(Stew), 빵을 굽다(Bake)·고기(Roast)·생선(Broil ) 등 겉만 살짝 구울 경우(Toast), (뜨거운 김에) 찌다(Steam), 미리 예열하다(Preheat), 살짝 튀기다(Saute) 등 7개밖에 안 된다.

'책상다리만 빼고 다 먹고, 날아다니는 것은 비행기만 빼고 다 먹는다'는 속담이 있듯,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요리 가짓수가 많은 중국 음식이지만, 가열 동사는 중간불로 기름에 볶는다(차오·炒), 삶는다(펑·烹), 기름에 볶은 후 삶는다(샤오·燒), 뜨거운 기름·물로 단시간에 튀기거나 데친다(바오·爆), 다량의 기름으로 튀겨낸다(자·炸), 얇은 옷을 입혀 바삭바삭하게 될 때까지 튀긴다(췌이·脆), 약간의 기름을 두르고 지져낸다(젠·煎), 찐다(정·蒸), 주재료에 국물을 붓고 쪄낸다(둔·燉), 재료를 연기로 찌는 일종의 훈제법(쉰·燻), 약한 불에다 서서히 연하게 익힌다(웨이), 불에 직접 굽는다(카오), 약한 불에서 오래 끓여 달여 낸다(먼) 등이 있다.

그러나 한글에서 가열 동사는 21가지나 된다. 습열법(濕熱法) 16가지. 태운다, 달이다, 졸이다, 익히다, 고다, 쑤다, 끓이다, 삶다, 찌다, 지지다, 데치다, 튀기다, 짓다, 토렴하다, 덥힌다, 데운다.

다양한 조리법·독창적 요리 '밑거름'

우리 옛 문헌에 보면 '굽는다'도 직접 불에 굽는 燔(구울 번), 꼬치에 꿰어 굽는 炙(고기 구울 자), 진흙으로 싸서 굽는 包(구울 포), '삶다'도 蒸(찔 증), 煮(삶을 자), 烹(삶을 팽) 자를 써서 구별했다. 그리고 건열법(乾熱法) 5가지. 굽다, 볶다, 불에 쬐다, 햇볕에 쬐다, 그슬리다.

가열 동사의 응용은 다양한 조리 방법과 요리를 창안해내게 됐다. 습열법과 습열법, 건열법과 건열법, 습열법과 건열법, 건열법과 습열법을 오가며 조리 방법은 수십 가지로 늘어나게 된다.

   
 
 

예를 들어 산나물이 있다고 하자. 그냥 무치면 겉절이가 되고, 살짝 데쳐 쌈채로 할 수가 있으며, 삶아서 무치면 나물이 되고, 푹 끓이면 국이 되며, 삶은 걸 말리면 시래기, 말린 걸 튀기면 부각, 말린 걸 양념해 찌면 나물찜이다. 이렇게 한 가지 재료로 한글의 가열 동사를 오가다 보면 다양한 요리가 나오게 된다.

필자는 대학 특강 때 요리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한국 음식을 제대로 배우고 외국요리를 하게 되면 독창적 요리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요리사가 될 수 있다. 세종대왕에게 한식 요리 다시 배우자."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미국 캘리포니아주 ASU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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