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방식 이용 토속적 향내 가득

지난 24일 모처럼 하늘이 갰다. 희뿌옇던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과 따사로운 햇빛이 고개를 내민 날. 통영 산양읍으로 내달렸다. 마산 진동과 고성을 지나는데, 길이 꽉 막혔다. 통영 시내도 마찬가지였다.

통영이 참 많이 변했다. 시내를 보면 알 수가 있다.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섰고, 대형마트도 쉽게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변함없이 통영만의 풍광을 간직한 곳도 많다.

산양일주도로가 바로 그 예다. 날이 맑기도 했지만, 통영대교를 건너니 길도 뻥 뚫렸다. 꿈길 60리. 해안선을 따라 23㎞ 거리로 이어지는 길, 산양일주도로의 별칭이다. 통영 사람들이 그렇게도 부른단다. 미수동, 산양읍, 삼덕항, 중화리, 달아공원에 이르는 이 길에서 진정한 통영의 정취가 느껴지기도 한다.

산양양조장이 이 길가에 있다. 산양중학교와 산양읍사무소 쪽 길로 들어가지 않고, 삼덕항으로 쭉 달리면 된다. 삼덕항에서 작은 고개를 하나 넘을 때 바다는 그야말로 비경이었다.

비경 속에 숨은 막걸리…멍게랑 찰떡궁합

입국을 만드는 오동나무 상자와 입국을 싸놓은 비닐.

경남수산과 바다풍경펜션 샛길 들목에 작은 표지판이 보였다. 산양양조장 팻말이다. 골목 안으로 스무 걸음만 옮기면, 양조장이 보인다. 이걸 보고 많은 관광객이 양조장에 들른다. 막걸리 좀 맛보려고.

이복치(69)·박애란(59) 부부가 양조장을 꾸린 지는 30년이 넘었다. "제가 넘겨받을 때는 기와집이 네 채나 있었는데, 이걸 허물고 지금 모습이 된 지는 14년째죠."

여느 시골 양조장을 생각해선 곤란하다. 꽤 큰 규모다. 황토색 2층 건물이다. 1층이 술 빚는 곳이고, 2층은 부부가 사는 집이다. 숙성실, 고두밥 찌는 솥과 술을 병에 담는 시설이 있는 장소 등을 합하면 족히 165㎡(50평)는 된다.

작은 화물 트럭 하나 정도 지나다닐 수 있는 마당도 있다. 배달 차량이 이곳으로 들어와 막걸리를 실어나른다. 통영 시내 곳곳에 나간다. 작은 상점뿐 아니라 대형마트에도 유통된다.

부부는 현재 통영 지역 양조장은 모두 세 곳이라고 일러줬다. 산양양조장, 도산양조장, 광도양조장. 시내 합동양조장은 없어지고, 인근 읍·면 단위 세 양조장이 시내에 막걸리를 내놓고 있다.

이복치 대표는 부산지역 양조장에서 일하다가 산양양조장을 사들였다. 거제가 고향인 그는 그렇게 통영 산양읍에 눌러앉게 됐다. 한적하고 빼어난 어촌의 경치에 반해서이기도 하다.

애주가, 특히 여행을 통해 그 지역 술도 찾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맛봐야 할 막걸리다. 그림 같은 일몰·일출 광경이 펼쳐진다는 달아공원, 통영수산과학관, 소설가 박경리 묘소 등을 함께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

하루 남짓 지나고 난 뒤 거르게 될 술. /이동욱 기자

1983~88년까지 산양양조장 전성기였다. 이후 점점 내리막길이다가 요즘 막걸리 붐 때문인지 매출이 생각보다 괜찮아졌다고 했다. "막걸리 번성·쇠퇴 주기가 10년이라잖아요. 근데, 16~17년 만에 부활을 본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부산·경남을 비롯해 전국에 진출해 있는 대형 양조장 막걸리만 안 들어와도 사정이 좀 나을 거라고 부부는 말했다.

양조장 전성기는 멍게 양식이 한창 번성했을 때다. 마을 사람들이 간식으로, 밤참으로 즐겨 먹었다. "산양읍 옛날 인구는 제법 많았지요. 근데 지금 6000명도 채 안 된다고 해요. 그땐 '배달 나간 기사가 어디 막걸리를 내버리고 오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주민들이 많이 마셨지요."

굴 공장도 많았는데, 쉬는 시간 막걸리를 마시는 일이 작업에 지장을 주기도 했다. 술 마시는 사람들의 취향이 맥주나 소주로 바뀐 사실도 이유이겠지만, 손으로 작업하던 게 이젠 기계화해 일하는 사람도 줄어 굴 공장으론 막걸리가 아예 팔리지 않는단다.

아직 인근 영운리에선 대단위로 멍게 양식을 하고 있다. 산양 막걸리와 함께 즐길 안주로 딱 맞다.

오동나무 상자 습도·온도 유지 탁월

   
 
 
막걸리와 동동주를 같이 만들고 있다. 산양 생(生) 막걸리와 산양 생 동동주. 동동주가 7도 정도로 막걸리보단 진하다. 쌀알이 동동 뜨는 동동주에는 당분이 풍부하고, 보관 기간도 7일 남짓인 막걸리와 비교해 사나흘 정도 길다.

둘 다 쌀과 밀가루 반반씩 써서 빚어낸다. 일주일 정도 숙성 과정을 거친다. 누룩과 덧밥을 1대 1 비율로 섞어 밑술(주모)을 만들고, 술빚을 때 넣는다. 밑술이 발효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숙성실을 들여다 봤을 때 전통 독과 스테인리스 통이 섞여 있는 모습이었다. 깨진 독을 대신해 어쩔 수 없이 스테인리스 통을 들여왔다. "요즘 큰 독을 쉽게 구할 수가 있나요. 스테인리스 통보다는 단지가 훨씬 낫지요. 단지는 숨을 쉬거든요. 물을 빨아들이거나 품는 그것이 눈에 보입니다."

효모와 곰팡이를 인위적으로 접하게 해 입국(누룩대용품)을 직접 만드는데, 여기에 쓰이는 습도·온도 유지에 탁월한 오동나무 상자는 옛것 그대로다. 와인 같이 만들어지는 맛보다 옛 방식 그대로 토속적인 맛을 내려고 공을 들이고 있다. 은근히 구수하고, 텁텁한 게 탁 쏘는 맛도 좋다. 1병(0.75ℓ) 800원, 1상자(20병) 1만 6000원(택배 가능). 통영시 산양읍 연화리 693-2번지. 055-64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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