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열화와 같자 진왕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의 죄가 무엇인지 우선 다루어 보기라도 하오. 그런 후에 죽여도 늦지 않소.”

한편 이사는 독약을 들려 서둘러서 가만히 옥중으로 사람을 보냈다. 한비를 지극히 아끼는 진왕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그를 제거하는 게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사는 옥으로 갔던 부하한테 물었다.

“어떻게 되었느냐?”

“한비는 죽었습니다.”

“맹독을 마시고 죽은 건 안다. 아무말도 하지 않더냐고 묻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대왕을 알현하고 싶다고 부탁했습니다. 직권으로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그게 끝이냐?”

“옛 친구로서의 정의(情誼)가 있으니 승상을 뵙게 해 달라고 합디다.”

“그래서?”

“그 역시 불가능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때서야 체념을 하더군요.”

“삶의 미련을 깨끗이 포기하고 흔쾌히 독배를 들었단 말이지.”

“아뇨. 하늘을 우러러 크게 외치기부터 했습니다.”

“무어라 외치더냐?”

“나 한비는 세상 법규를 먹줄 친 것처럼 분명하고 깔끔하게 제정해, 시비를 분명하게 분별해놓았다. 궁극적으로는 너무 각박하여 인정미가 없다는 죄 하나로 나는 죽는다. 다만 <세난>을 저술했으면서도 자신의 화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못내 슬퍼할 따름이다….”

즈음에 진왕은 한비의 <세난> 다른 대목을 읽고 있었다.

‘용이라는 짐승은 잘 길들여 친하게 되면 등을 타고 장난도 칠 수 있으나, 딱 한 군데 용의 약점인 목에 붙은 한 자 가량의 역린(逆鱗?용의 턱 밑에 거슬려 난 비늘)을 건드리면 불같이 화를 내며 반드시 그 사람을 물어 죽인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으므로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는 한 유세자의 유세는 거의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역시 한비의 저작들에는 대단한 설득력이 있다. 그는 천재다!”

진왕은 한비의 투옥을 뉘우쳤다. 즉시 사자를 보내 한비를 모시고 오도록 했다. 하지만 한비는 이미 죽고 없었다.

그렇지만 진왕의 정책은 한비의 학설에 이미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한비는 미자하의 행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미자하의 행위 그것에는 아무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에는 칭찬받고 후에는 죄를 입게 되는데, 그것은 다만 상대방의 사랑과 미움이 변했기 때문이다. 애정의 움직임을 살펴서 처신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세난>에는 결국 이 시대의 숨막힐 것 같은 고민과 처절함으로 가득 차 있다.”

사마천은 또 한비자를 한 마디로 이렇게 평했다.

“먹줄을 친 것처럼 법규를 너무 깔끔하게 제정해 가혹해서 은혜가 없었다. 그가 불행을 맞게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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