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빈 자리엔 욕심이 드리운 그림자만

오는 16일이 삼짇날이다. 아름다운 봄날 고향집을 들어서는데 처마 밑에 새 한 마리 앉아 있다. 제비다!!! 올해도 잊지 않고 우리 집을 다시 찾아 주었다. 전깃줄에 앉은 제비와 하늘을 나는 제비가 얼마나 많은지 하늘만 쳐다보며 로또라도 당첨된 듯 마냥 맘이 설렌다.

◇제비가 사랑받는 이유

제비는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강남 갔다가 음력 3월 3일 삼짇날에 돌아온다. 우리는 이렇게 홀수가 겹치는 날을 좋아한다. 오월 오일 단오와 칠월 칠석 모두 홀수(음양오행에서 양수)가 겹친 날이다.

농부에게 제비는 농사에 해로운 벌레를 많이 잡아먹어 주는 고마운 새다. 물찬 제비처럼 빠른 몸놀림과 총명함으로 길조로 생각되어 잡아서 장난을 치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제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제비는 사람과 함께 살면서 천적인 뱀이나 동물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는다. 제비와 사람은 예부터 더불어 함께 살아왔다.

   
 
 

제비는 두루미·까치·원앙과 함께 부부간의 정이 좋아 부러움을 받아왔다. 어떤 조사에서는 아빠 제비가 또 어떤 연구에서는 엄마 제비가 먹이를 더 많이 물어다 먹인다. 결론은 부부가 함께 공동육아를 잘 한다는 것이다. 세상 엄마들과 아이들이 바라는 아빠의 모습은 가시고기나 물자라처럼 혼자 육아를 맡아서 하는 건 꿈도 안꾸고 대신 제비처럼 함께 육아라도 해 주면 좋아할 듯하다.

◇제비초리는 바람기의 상징인가?

귀제비 /오광석

초리는 꼬리의 옛말인데 제비꼬리처럼 머리 뒤꼭지에 머릿결이 모여 뾰족하게 되는 것을 제비초리라고 한다. 어떤 이는 좋은 징조라 하고 어떤 이는 바람기가 있다고 한다. 예전엔 좋은 의미였는데 제비족이라는 단어가 영어와 함께 들어오면서 바람난 제비의 이미지가 겹쳐진 것으로 생각된다.

제비추리는 소의 안심에 붙어 있는 고기다. 제비추리는 소의 갈비 안쪽 흉추 몸통을 따라 길게 붙어 있는 띠 모양 근육살인데 모습이 제비가 날개를 편 것 같이 날씬하고 길어서 제비추리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제비 모양이나 제비 꼬리와는 관계가 없고 제비뽑기나 수제비의 제비처럼 갈비 안쪽에 살을 발라내기가 정말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갈비 안쪽이라서 손으로 추려낸다고 제비추리라고 한다고 하는데 고기 손질하는 분들에게 제비추리 발라내는 과정을 더 자세히 알아보아야 할 듯하다.

◇제비에 대한 인간의 생각

삼월 삼짇날 제비를 보면 손을 흔드는 풍습을 풍등(豊登)이라고 한다. 왜 이리 제비에게 손을 흔들며 반겼을까? 흥부전의 은혜갚은 제비처럼 우리에게 제비는 보은, 부부애, 귀향과 약속의 의미가 있다. 강남 간 제비가 돌아온다는 귀향의 뜻은 대중가요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가수 김건모의 제비(강남 갔던 제비도 다시 돌아오는데 룰루랄라 날 버리고 간 님은 언제 돌아오려나), 조영남의 제비(바람 따라 제비 돌아오는 날 당신의 사랑 품으렵니다), 윤승희의 제비처럼(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제비처럼 )에서 제비는 봄이 되면 꼭 돌아오는 우리의 친구였고 한 지붕 아래 같이 사는 가족이었다.

◇제비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

'제비가 빨리 오면 풍년이 든다.' 제비가 빨리 온 것은 봄이 빨리 오고 일조시간이 길어져 벼가 잘 자란다는 경험에서 나온 속담이다. '제비가 새끼를 많이 치면 풍년이 든다.' 먹을 곤충이 많아 튼튼해서 새끼를 많이 친다는 의미보다는 새끼를 많이 낳는 돼지가 복과 재물을 가져다 주는 것처럼 제비 새끼를 많이 낳으면 제비집이 있는 집도 부자가 된다는 믿음이다.

   
 
 

'제비를 먼저 보면 기쁜 일이 생긴다.' '제비가 집 안에 집을 지으면 좋은 징조다.' '제비가 집 안에 집을 지으면 복이 생긴다.' '제비가 잘 번창하면 그 집안이 부귀해진다.' 제비가 복을 준다는 믿음이다.

'제비가 다음 해에 찾아오지 않으면 집이 망한다.' '제비집을 부수면 그 집에 재앙이 온다.' '제비를 죽이면 벌 받는다.' '제비를 죽이면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복을 주는 제비를 못 살게 하면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일기예보

'제비가 땅을 스치며 낮게 날면 비가 온다.' '제비가 목욕을 하면 비가 온다.' '제비가 물을 차면 비가 온다.' '제비가 분주하게 먹이를 찾으면 비가 온다.' '제비가 사람을 어르면 비가 온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고 하는 것은 오랜 경험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믿음이다. 비가 오기 전에 곤충도 몸이 젖는 것을 막기 위해 땅으로 낮게 내려오는데 제비도 먹이를 찾기 위해서 낮게 나는 것이다.

◇제비 몰러 나간다

"제비 몰러 나간다. 제비 후리러 나간다." 박동진 명창의 광고로 내일로 이어지는 우리의 가락처럼 변함없이 제비가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우리 가락처럼 제비도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언젠가 박동진 명창의 "잘 한다.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처럼 "잘 한다. 우리 제비가 소중한 것이여" 하며 제비가 다시 우리 곁에 날아오면 좋겠다.

   
 
 

요즘 시골에서 제비를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농약 치고 있는 논이다. 농약을 맞고 비실비실하는 곤충을 제비가 잡아 먹는다. 농약 중독으로 곤충과 제비가 서서히 줄어들어 삼월 삼짇날이 되어 제비꽃이 피었건만 손 흔들어 줄 제비는 오지 않는다. 제비는 그냥 새가 아니라 사람의 삶이 바른지 그른지를 살피는 우리 맘 속 하늘의 사자이다. 제비가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 맘 속에 제비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정대수 진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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