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 속 가득 술 익는 소리
"우리 대에서 끝이 날 것 같습니다." 고성군 개천면 명성리에 있는 개천양조장은 박진호(79)·양영화(74) 부부가 자그마하게 꾸려가는 곳이다. 부부가 머무는 집 한 편에 숙성실과 솥 등이 있는데, 모두 1972년 양조장을 넘겨받았을 당시 그대로다.
수많은 양조장이 현대화 시설을 하나씩 들여놓고 있지만, 개천양조장에는 전혀 없다. 20세기 양조장의 모습을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는 곳이다. "옛날 고집 그대로 이런 곳이 전국에 간간이 남아 있겠지요." (박진호 씨)
고성군에는 다른 지역보단 양조장이 많이 남아 있다. 예전에는 면 단위로 하나 이상도 있었던 게 현재 개천양조장, 영오양조장, 배둔양조장, 상리양조장, 하일양조장, 하이양조장, 고성읍 양조장 등으로 족히 7개는 된다고 부부는 일러줬다. 땅에는 인간의 손이 덜 닿았고, 도심으로부터 떨어진 점도 그 까닭이겠지만, 그만큼 막걸리를 빚어내는 장인들이 건재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양조장 주인장들은 도통 취재에 응하려 하지 않았다. 개천양조장도 처음에는 마찬가지였다. 부부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됐다.
흙으로 빚은 술독에 담그는 전통방식 그대로 …
"15~20년 전부터 양조장이 계속 줄었지요. 나라 경제가 나아져 촌 사람들이 객지로 빠져나가고, 도시 사람들도 소주나 맥주를 찾았으니까요. 식량이 없었을 때는 막걸리는 배부르니까 선호했지, 시골 양조장은 재미가 없어졌지요."
대개 양조장들이 상표도 등록해 놓지만, 이곳 막걸리는 그저 '개천양조장 막걸리'라고 불릴 뿐 이름은 없다. 그럼에도, 근처 연화산에 오르거나 옥천사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찾고 있다. 양조장이 사라지면, 가장 안타까워할 사람들이겠다.
부부에게는 새로울 비법이랄 것도 없다. 박진호 씨는 "그냥 술 맛 내는 오래된 노하우"라고 했다. "첫째, 물이 좋아야 하죠. 물은 술의 근본입니다. 둘째, 원료가 좋아야 합니다. 셋째는 정성이지요. 특히, 막걸리의 핵심 가치는 발효입니다. 효모가 살아있어야 제 맛을 내지요. 살균은 막걸리의 본능을 잃어버리는 일입니다."
대를 이을 자식도 없고, 워낙 산 속이라 교통이 불편하기에 넘겨 받을 사람도 없다. 배달도, 택배도 못하고 있다. 사정이 어렵지만, 오시는 손님들한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술을 담가 드리는 그것뿐이다.
살아있는 그 맛에 산골로 이어지는 발길
첫 맛이 순했던 개천양조장 막걸리는 입에서와는 달리 삼켰을 때는 안에서 톡 쏘는 느낌이었다. "술의 진미는 옹기(술독)에서 나옵니다. 아무래도 쇠붙이를 거치면 맛이 떨어지게 되지요. 무엇이든 흙에서 나오는 맛이 좋지요." 고성군 개천면 명성리 개천초등학교 맞은편에 있다. 055-672-0345.
배달도 안 되고, 택배도 안 되는 개천양조장 막걸리를 쉽게 맛볼 방법은 없을까. 나들이 삼아 연화산에 갔을 때 잠시 들러 술을 받아가도 되겠다. 아울러 도심에서도 개천양조장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 창원 중앙동 올림피아상가 1층에 있는 함경도 찹쌀순대(055-279-0460~1)에서다. 큰 사발 하나에 5000원. 순대집 하심화 사장은 지난해 10월부터 개천양조장 막걸리를 내놓고 있다.
"시골 막걸리는 농번기 아니면 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많이 안 나간다고 해요. 막걸리 붐이지만, 영세한 지역 양조장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호롱불 같은 위기죠." 7년째 손수 순대를 빚고, 국밥도 말아주던 곳에서 막걸리를 팔게 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