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봄나물

요새 봄이 참 밉다. 얼른 맞이해 얼어붙은 맘 좀 녹이자니 모퉁이 뒤에 숨어 고개를 빠끔 내밀고 쳐다만 보는 모양새다. 봄의 따스함이 빨리 오지 않는 탓에 요즘 새벽 공기, 밤 공기에는 몸이 으스스 떨리기도 한다.

이번 주 경남 날씨 예보를 봐도 희망은 찾기 어렵겠다. 겨울 점퍼를 고이 세탁해 옷장에 집어넣자니 조금 애매했던 최근 날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다. 화창하게 갠 하늘을 볼 수 없겠다고 한다.

완연한 봄날씨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꽃망울도 때를 맞춰 터지느라 애쓰는 건 봄을 맞는 사람과 마찬가지인 듯하다. 이와 달리 봄을 기다리지 않고 되레 봄이 왔음을 일찍이 알려주는 게 있다. 입맛도 당기고, 춘곤증마저 쫓아낸다며 사랑받는 봄 식탁의 전령, 봄나물이다. 식탁에서만큼은 봄나물로 대신해 하루빨리 봄의 따스함을 맛봐도 괜찮겠다.

쑥·냉이·자운영·머위… 끝없는 봄나물 세계

쑥, 돌미나리, 머위(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봄나물이 '봄에 산이나 들에 돋아나는 나물'을 뜻하듯이, 그 종류만도 셀 수가 없다. 입맛을 돋우는 봄나물을 식탁에 올려 보자.

쑥과 더불어 그 향기로 봄이 왔음을 알리는 냉이는 굴이나 바지락과 함께 된장국에 넣거나 삶아서 된장에 버무려 먹으면 된다. 클로버를 닮은 자운영, 머위 등은 초고추장이나 된장에 무쳐 먹을 수 있다. 잘 씻어 다듬은 미나리나 푹 삶은 머위를 쌈처럼 밥에 곁들이면 뚝 떨어진 입맛도 살아나겠다.

향 좋은 쑥·냉이 된장국 재료로 '딱'

봄나물은 건강을 지키는 데도 탁월하다. 싹을 주로 나물로 해먹거나 차로 마시는 원추리(넘나물)는 약간 독을 품고 있어 많이 먹으면 해롭지만, 자양강장제로 빈혈과 폐결핵 등에 효과가 있다.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하는 두릅은 혈액 순환을 도와주고, 두릅나무 가시를 달인 물은 고혈압에 좋다고 한다.

어떤 곳에서도 잘 자라는 돌나물(돈나물, 돈냉이) 역시 싹을 나물로 무치거나 김치로 담가 먹기도 한다. 원추리와는 반대로 해독 성분이 들어 있어 벌레나 뱀에 물린 상처에 꽃을 붙이면 치료에 도움이 된다.

지난 21일 오전 김해시 진영읍 전통시장에 들어섰다. 진영장은 끝자리가 4일, 9일인 때 서기 때문에 이날

봄을 파는 사람들

   
 
 
시장에는 활기나 북적거림을 볼 순 없었다. 한편, 옛 지붕과 기둥 등을 허물고 정부와 김해시 지원으로 새로 짓는 전통시장은 여름 즈음 만날 수 있다고 한 상인이 전했다. 한때 진영시장은 김해 시장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융성했지만, 지금은 문 닫은 곳도 많아 잔뜩 움츠러든 형국이다.

시장을 찾은 건 봄나물 내놓고 파는 아지매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시장에선 볼 수 없었으나 아지매 몇몇이 길가에 있었다. 비록 자리는 비좁더라도 봄나물 보따리를 길가에 펼친 까닭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 대번에 눈길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읍내가 비슷한 풍경이겠지만, 진영읍내는 제법 많은 아파트가 밀집하고 도로도 시원하게 뚫린 진영 신도시와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도로와 인도가 아주 좁아 무단 횡단이나 무단 주차는 예삿일이다.

미나리·머위 쌈 '뚝' 떨어졌던 입맛 '쑥'

좁은 도로는 동네 사람들의 소통 통로이기도 하다. 그래서 봄나물 아지매들도 길거리로 나선다. 특히, 농협중앙회 진영지점과 진영시외버스터미널 근처는 워낙 사람이 많아 경쟁이 될 정도다. 아지매들은 직접 뜯어오거나 재배한 걸 받아와 자리를 펼친다. 자리를 메우는 건 당연히 봄나물.

농협중앙회 진영지점 앞에 앉은 차명선(60) 아지매를 만났다. 아지매는 버스정류장과 어른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나마 버스정류장과 가까우면 사람들 눈에 더 띌 수 있어서다.

아지매는 머위, 돌미나리, 쑥 등 봄나물 세 종류를 작은 바구니에 담아 거리에 내놓고 있었다. 진영읍 하계리에서 아지매가 손수 캐온 나물들이다. 아지매의 봄나물 장사는 보통 2월 말부터 3월 말까지 계속된다고 했다.

머위와 돌미나리를 합해 5000원어치 샀는데, 아지매는 배구공 크기만큼 비닐봉지에 싸서 담아줬다. 머위의 경상도 표준말이 '머구'다.

원추리 자양강장, 두릅 혈액 순환 도움

설명이 뒤따랐다. "머구는 삶아서 초 무침이나 된장에 버무려 먹고요. 삶은 돌미나리는 나물로 해먹어도 되고, 쌈 하고 먹어도 좋아요. 미나리는 간이 나쁜 사람한테 좋아서 즙을 내서 마셔도 되지요. 향이 좋은 쑥으로는 국을 끓이면 좋겠네요."

머구는 보통 습기가 있는 곳에서 잘 자라는데, 아지매는 밭에 머구 뿌리를 심어 캐온 거라고 했다. 쑥은 비닐이나 천 등으로 가리지 않은 땅에서, 돌미나리는 도랑이나 논두렁에서 스스로 잘 자라 뽑혀 왔다. 쑥과 돌미나리는 자연산이라는 얘기였다.

머구는 쌉싸래한 맛이, 미나리는 새콤달콤한 맛이, 몸 안 독을 없애는 데 뛰어나 약재로도 쓰인 미나리는 씹히는 맛이 좋다. 갑자기 버스정류장 건너편 철물점 김정희(63) 사장이 커피 한 잔을 타서 아지매에게 건넸다. "고생이 많소." 봄나물을 보러 온 김 사장은 뜬금 없이 요즘 교육을 탓했다. "봄나물이 어째 나는지, 쌀이 어떻게 생기는지도 도시 애들은 모르는 거라. 컴퓨터만 할 줄 알았지." 아지매도 이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서 봄나물을 직접 기르거나 캐는 일을 해볼 걸 권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