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kg이 넘는 말 몸무게를 이기려면 팔 힘이 필요한데 여자기수로서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말과의 호흡에 있어 남자기수보다 더 감각적이고 유연하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해 7월 만났을 때 고 박진희 기수가 밝힌 여자기수의 장·단점이다.

12일 김해 장유면 자택에서 목매 숨진 고 박진희 기수에 대해 경찰은 자살로 결론을 내렸다. 유서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현실적 한계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 방법을 선택한 것에 무게감이 실린다.

국내에는 경마공원이 서울, 제주, 부산·경남에 있다. 고 박진희 기수까지 경마 기수가 자살한 경우는 두 번. 모두 여자였고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발생했다.

앞서 2005년에는 이명화 기수가 숙소에서 자살을 했다.

서울·제주 비해 심한 경쟁구도 압박

   
 
 
고 박진희 기수는 지난해 "나 포함해 여기수 3명이 있었는데, 한 명은 다쳐서 그만뒀고, 한 명은 너무 힘들어 자살했다. 그때 우울증이 심해져 2005~2006년 1년 정도 쉬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결국은 시간이 다 해결해 주더라"며 아픈 기억을 훌훌 털었다는 듯 얘기했다. 그랬던 그녀가 고 이명화 기수의 뒤를 이은 것이다.

부산·경남서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유독 심한 경쟁 구조가 원인. 고 박진희 기수는 유서에서 '서울과 제주에 비해 부산·경남이 가장 힘들다'고 밝혔다. 이 뜻은 뭘까?

부산·경남경마공원 관계자는 "서울과 제주는 출전만 해도 일정 상금이 나오지만 부산·경남은 출전 상금이 없는 대신 착순 상금이 많다"고 했다.

부산·경남은 좋은 성적을 유도하는 철저한 경쟁 구조다. 서울과 제주보다 늦게 개장한 부산·경남이 이른바 경마 선진국의 일반화된 사례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출전 상금 없지만 입상땐 '듬뿍'

이런 구조에서는 마주·조교사가 성적 좋은 선수를 선호할 수밖에 없고, 여자 기수에게 더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 박진희 기수가 "남자 동기들보다 출전 기회가 4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던 말, '왜 다들 상처만 주는 걸까. 모두 도와주질 않아'라고 밝힌 유서에 부산·경남경마공원의 폐쇄성이 담겨 있다.

부산·경남경마공원 관계자는 "유서에 조교사 얘기 다 있다. 특정인에 대한 얘기가 아닌, 전체적으로 폐쇄적이었던 이 공간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제 부산·경남에는 일본인 히토미만 외롭게 여자 기수의 명맥을 잇게 됐다. 서울, 제주까지 합친 전체 숫자는 모두 6명이다.

이번 일로 부산·경남경마공원과 마사회는 기수들에 대한 심리 상담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고, 여성 기수 보호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여자 기수에 대한 보수성도 작용

하지만 결국엔 지나친 경쟁에 대한 접근이 빠질 수 없다. 부산·경남경마공원 관계자는 "경쟁과 노력을 통해 더 좋은 기수·경주마가 나오는 것이 경마가 도박판으로 변질하지 않는 방향"이라면서도 "기수들에게 큰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줄 잘 알고 있다. 그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앞으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14일을 애도일로 정하고 자체 경주를 모두 취소한 부산·경남 경마공원은 장례식 비용을 모두 부담하는 한편 성금을 모아 유가족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대상 경주 출전이 꿈이고, 나아가서는 조교사가 되고 싶어요. 결국 말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봐요.'

'말은 내 운명'이라고 밝힌 한 여자 기수의 못 이룬 꿈이 메아리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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