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힐수록 더 꿋꿋한 기운받아 문명병에 지친 몸 달래보세요

날씨가 많이 포근해졌습니다. 농부는 산밭을 갈고 그 아내는 밭두렁에 앉아 쑥을 캡니다. 밭 한 모퉁이에는 쪽파가 실하게 자라고 있고요. 황토 냄새가 싱그럽게 코 끝을 스칩니다. 양지쪽 길섶이나 밭둑가에는 배암차즈기 몇 포기가 겨울에 얼었던 갈빛 잎을 갈고 새 잎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월년초(越年草)들이 눈에 띄게 활기를 찾고 푸른빛을 펼칩니다. 마음이 성큼 봄을 향해 열립니다. 할머니의 소쿠리에는 벼룩아재비·광대나물·개불알풀·별꽃 여린 순이 소복히 담겨 있습니다. 곁에 앉아 버드생이 어린잎이 마른 잎을 헤치고 올라오는 새순을 뜯어 담아 줍니다.

"젊은 사람이 나물도 많이 아네. 이것 먹는 것은 우찌 알았노?" 나는 막 새순을 밀어 올리는 질경이 한 뿌리를 곱게 뽑아서 가지런히 정돈해서 넣어줍니다.

   
 
 
"벌써 빼뿌쟁이가 났습니더." "났고 말고 저 쯤치는 냉이가 한참 컸다." 등 뒤로는 따사로운 햇살이 겉옷을 벗게 합니다. "이 빼뿌쟁이는 잘 씻어서 국 끓여 먹으마 제일인기라. 쫄깃한 것이 달콤한 맛도 돌면서 몸에도 그리 좋다네." "이 나물을 질경이라 부르는데 피를 맑게 하는 데는 최고라고 합니더. 새싹 막 올라 올 때만 부드러워서 나물로 먹지예?" 한창 대화가 길어집니다. 할머니가 옛날 처방해서 먹는 온갖 민간요법이 다 동원되고 둘은 죽이 척척 맞아 한나절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질경이는 마차바퀴 아래 수없이 깔려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틴다고 하여 '차전자', 척박한 길가나 자갈밭에서도 잘 자란다고 하여 '길장군' 등 별명도 많은 풀꽃입니다. 여름에 꽃이 피면 학교 길에 모여앉아 긴 꽃대를 뽑아 '꽃씨름' 놀이를 하던 친근하고 정겨운 질경이는 우리 민족의 끈기를 많이 닮았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밟히면 밟힐수록 잘 자란다는 질경이 전초에는 섬유질이 풍부하여 변비 치료나 이뇨제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눈을 맑게 하고 대하를 치료한다 하여 민간에서 애용하는 약초이기도 합니다. 이른 봄에 새순을 뿌리째 캐서 나물해 먹거나 국 끓여 먹으며, 전초는 그늘에 말려서 차로 만들어 먹거나 물에 달여 먹기도 합니다. 민간에서는 청열·거담·소변 불통·대하·혈뇨·해수·황달·수종 등에 달여 먹으면 좋은 효과를 보았다고 합니다. 또, 그 씨앗은 볶아서 차로 달여 마시기도 하고 전초와 함께 갈아서 환을 지어 먹으면 변비와 정혈 작용이 뛰어나다고도 합니다.

은근과 끈기로 척박한 환경을 견디며 질기디 질기게 자란다고 붙은 이름 '질경이'는 각종 문명병인 고혈압·만성 간염·부종·바이러스성 이질·신장염·방광염·요도염 등 여러 가지 질환에도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만성
 
   
 
간염에는 씨앗을 달여 마시고, 고혈압에는 전초를 달여 마시면 좋은 효과를 본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가장 흔한 우리 풀꽃이면서도 으뜸가는 영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올 봄에는 질경이로 문명병에 지친 몸을 달래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합니다. 밟히고 밟히면서 더욱 꿋꿋하게 꽃피우는 질경이의 꽃말은 그래서 '발자취'랍니다. 질경이의 삶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더욱 심장해질 것입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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