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군 화개합동양조장 '화개장터 막걸리'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 말은 영세한 지역 양조장들에게도 통한다. 막걸리 생산과 유통도 자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순 없어서다. 대형 생산 라인을 갖춘 양조장들은 한 양조장이 특정 지역에 국한했던 과거와 달리 전국을 단위로 거대 유통망을 짜고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영세 양조장들이 택해야 하는 건 '변화'다.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 화개합동양조장 이근왕(47) 사장은 이에 대해 공감한다. "도시에선 붐이라고 할 정도로 막걸리가 뜨고 있지만, 시골은 그렇지 못하죠. 소비할 연령층이 없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나이 든 사람들이 막걸리를 많이 먹었지만, 지금은 20~40대가 붐을 조성하고 있잖습니까."

화개합동양조장 이근왕(왼쪽) 사장과 이병윤 기사가 화개장터 막걸리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이동욱 기자
◇지역 양조장의 살길 = 이 사장은 윗대 친척들이 운영하던 걸 내버려두고 있다가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양조장을 꾸려가고 있다. 도시에서 생활하던 그에게는 귀농인 셈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인수한 건 1973년인데, 그 이전에도 양조장은 운영됐다. 70년대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동네 양조장들의 강제 합병이 진행될 당시, 화개합동양조장은 두세 도가가 하나로 묶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역 술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밝혔다. "어떤 술 전문가는 '지역 술은 지역의 풍토와 문화가 만들어낸 시와 노래'라고 했죠. 제사를 많이 지내는 지역에서는 제주(祭酒)가, 농사를 짓는 고장에선 농주(農酒)가 발달하듯이 그 지역 문화에 맞춰가는 게 지역 술이죠."

빈속 채우던 진한 막걸리 전통 이어

우선, 그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작물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화개합동양조장에서 빚어내는 '화개장터 막걸리'에는 하동 쌀이 쓰인다. 아울러 하동 특산물인 밤이나 매실 등을 쓴 막걸리 연구도 하고 있다. 특히, 하동녹차연구소를 주체로 한 녹차 술(막걸리) 프로젝트에도 함께하고 있다.

화개장터 막걸리.
또한, 그는 현재 막걸리 붐에 대한 생각도 덧붙였다. "지금 막걸리 붐은 소비자한테서 나오는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랄 수 있죠. 정부가 쌀 소비 관련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토론회나 포럼 등도 연달아 열리고 있습니다. 잡곡을 섞은 막걸리가 등장한 것도 과거 정부 통제 때문이었습니다. 제조 방법이나 알코올 도수까지 정해줬죠. 거꾸로 쌀이 남는 상황에서 마찬가지 정부 주도로 쌀 막걸리 붐이 조성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 사장은 붐 이전에 남녀노소 막론하고 막걸리가 꾸준히 사랑받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그러려면 '싼 술', '질 낮은 술'이라는 평가를 넘어 막걸리의 순기능부터 제대로 재조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섬진강 물길을 따라 벚꽃이 필 때는 관광객이 몰려와 '화개장터 막걸리' 매출도 부쩍 오른다. 이때만은 서울이나 부산에서도 택배 주문을 한단다. 이 사장은 겨울철 비수기를 활용해 바깥과 교류한다고 했다. 시골이라도 고립돼선 안 된다는 뜻이다. 인터넷언론 <프레시안> 인문학습원에서 막걸리학교(교장 허시명 술 평론가) 수업을 받고 있다. 화개합동양조장과 '화개장터 막걸리'의 변화가 주목되는 까닭이다.

◇걸쭉한 옛 맛 그대로 = '화개장터 막걸리' 맛은 이 사장의 표현대로 '시골 막걸리'다. 걸쭉함이 남다르다. 이 사장은 곡물을 씹는 맛이 느껴질 정도로 술을 거른다고 했다. 알코올 도수도 6도 이상으로 일반 막걸리보다 다소 진하게 만든단다. 일하다가 끼니를 대신해 마시면 빈 속도 채워주던 막걸리의 장점을 이어오는 셈이다.

"명품을 만든다기보단 예부터 전해온 익숙한 방식대로 맛을 내는 거죠." 하동군농업기술센터가 추천한 하동 친환경 쌀과 더불어 재래 누룩을 쓴다. 대개 지금 양조장들이 스테인리스 통을 쓰는 데 반해 화개합동양조장은 옛 정취를 이어가는 듯 독에다 술을 안치고 있다. 술은 5일 정도 숙성된다. 숙성실에는 15개 남짓 독이 보였다. 독에는 비록 스테인리스 통보다 작은 양이 담기지만, 윗대부터 내려온 방식이다.

쌀과 밀가루는 5대 5 비율로 섞는다. 화개면 단위로 유통되고, 택배 주문도 가능하다. 화개장터 막걸리(20병) 1만 7000원, 녹차 막걸리(20병) 2만 원이다.

체험장 운영·청주 생산 등 생존법 고민

전통 독에 막걸리 재료를 담아서 익히는 숙성실. /이동욱 기자
앞날에 대한 이 사장의 고민에는 끝이 없다. 그는 약주(藥酒)라고도 불리는 '청주' 생산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아직 생산 시설은 취약하지만, '슬로시티(Slow City)'라는 하동의 콘셉트에 맞추고 시음과 술 빚는 체험도 가능한 전통 양조장으로 꾸려갈 계획이다.

"여러 종류 술을 개발해 제조 허가를 받고, 주문자 중심의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지역 양조장도 지속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윤 추구만 노리는 건 조상의 생활 방식과도 맞지 않죠. 특산물 농가와 양조장이 함께 커가는 지역 특화 향토산업이 돼야죠. 그게 막걸리 산업이 골고루 발전하는 길입니다."

화개장터를 지나 화개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된다. 화개시외버스공용터미널 맞은편에 있다. 하동군 화개면 탑리 678번지. 055-883-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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