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이기며 핀 꽃 눈물처럼 후두둑 떨어져 비련의 여인 표상으로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와 송창식의 '선운사' 노래에 나오는 동백꽃은 왜 슬픈 꽃일까? 거제, 사천, 통영, 고성, 남해 초·중·고 교화(校花) 순위 1위는 무슨 꽃일까?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은 노란 동백꽃이다. 노란 동백꽃은 진짜로 있을까? 뒤마의 소설 '춘희'와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춘희(椿姬)는 동백 아가씨가 맞을까? 남쪽 지역에서는 전통 혼례식을 올릴 때 왜 동백나무 가지와 동백꽃을 초례상에 올리고 부케처럼 동백꽃을 안고 사진을 찍었을까?

□배신당한 비련의 여인 동백아가씨

추운 겨울 이기며 핀 동백꽃보다 더 처절하고 정열적인 꽃이 있을까? 그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한다는 동백의 꽃말처럼 정열적이고 강렬한 사랑을 노래하는 꽃이 동백꽃이다. 그러나 동백(冬柏 camellia )은 꽃이 통째로 떨어져 버려 짓밟힌 순결과 배신당한 비련의 여인, 비정한 칼날에 떨어지는 아름다운 여인의 꽃이 되어 버렸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와 송창식의 '선운사'에서부터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까지 동서양 모두 비련의 꽃이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오"(이미자 노래, '동백 아가씨')

□아름다운 공생관계 동박새

동백의 질긴 인연 동박새.
동백꽃은 겨울에 피어 벌과 나비도 없는데 어떻게 꽃가루받이를 할까? 동백꽃은 진한 향기는 없어도 달콤한 꿀이 있어 동박새가 혼례를 치러준다. 추운 겨울 동백꽃과 동박새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아름다운 공생을 하지만 혼례를 치르고 나면 꽃잎이 통째로 떨어지는 질긴 인연의 끈은 참 슬프다. 동박새는 동백꽃보다 더 예쁘고 소리도 그리 고울 수가 없다.

◇거제 전통 혼례에는 ○이(가) 있다

전통 혼례하면 원앙 금침과 기러기, 대추, 솔가지와 대나무가 생각나는데, 거제에서는 결혼식을 할 때 동백을 꺾어다 올리고 기념사진 찍을 때는 부케를 안고 찍듯이 동백꽃을 안고 찍었다고 한다. 소나무나 대나무 대신 쓴 것으로 생각하는데 동백나무를 결혼식에 올린 이유는 동백처럼 오래 살고, 동백의 푸름처럼 변하지 않길 바라는 뜻일 것이다. 동백은 많은 열매를 맺어 다자다남(多子多男)을 상징한다. 아마 환갑이 지난 어르신 중에는 동백꽃이나 동백나무 가지를 초례상에 올리고 혼례를 올리신 분이 제법 계실 것이다.

◇동백을 집에 심기 꺼리는 이들 속내는?

거제가 고향인 곰솔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부스럼이 났을 때 여름에는 바닷물에 수영하면 나았고 바닷물에 못 들어가는 계절에는 동백씨를 찧어서 바르면 잘 나았다고 한다.

동백기름은 머리카락 끊김이나 갈라짐에 효과가 있고 머리가 잘 빠지거나 가려운 데 효과가 있으며 피부 염증 방지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 여인네 머릿기름, 화장품, 식용유로도 썼고 부스럼에 약으로 써 집에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으로 집에 많이 심었다.

그러나 동백을 절대로 집에 심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선비들은 역모로 목이 떨어지는 것처럼 동백꽃이 통째로 떨어지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꽃이 통째로 떨어지는 모습이 불길하고 불의의 사고, 예측할 수 없는 사고가 난다고 심지 않았다. 그래도 생필품인 동백기름을 짜야 해서 심지 않은 집보다는 심은 집이 더 많았다.

◇김유정의 동백꽃은 노란 동백꽃

김유정의 '동백꽃'은 마름 집 딸 점순이와 소작농 아들인 소년의 사춘기 이야기이다. 소설 마지막에 점순이와 소년이 꼭 안고 파묻히는 곳이 노란 동백꽃 향이 퍼지는 곳이라고 나오는데, 노란 동백은 없다. 그럼 김유정은 무슨 꽃을 보고 동백꽃이라고 했을까?

소설의 배경도 중부 지역이고 김유정의 고향도 강원도라서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노란 동백꽃은 생강나무 꽃일 것이다. 동백은 해안가에만 자란다. 중부 내륙 지역에는 생강나무를 동백이나 개동백이라고 부르고 생강나무 열매를 짜서 동백기름 대신 썼다.

나무를 꺾어 냄새를 맡아보면 생강냄새가 나서 생강나무라 부른다. 봄이 오는 3월에 산수유 필 때 집과 논밭의 노란 꽃은 산수유이고 산에 피는 노란 꽃은 생강나무 꽃이다.

꽃이 통꽃이 통째로 뚝 떨어지는 모습에는 삶의 영화와 나락이 찰나에 있다는 불교적 해석이 있다. 자연 생태적으로 보면 나무로 만든 목조 건물인 절집에 가장 무서운 것이 산불인데 산불에 가장 효과적인 방화림이 바로 겨울에도 늘푸른 상록활엽수라는 것이다.

◇왜 절 뒷산에 동백이 많은가?

고창 선운사, 여수 오동도, 해남 대흥사, 부산 동백섬, 강진 백련사,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처럼 전국에 동백으로 유명한 곳이 많다. 우리 지역에는 거제가 동백섬이다. 지심도, 학동 동백 숲, 서이말 등대, 해금강 쪽 해안에도 동백나무 숲이 아름답다. 수선화가 예쁜 거제 공고지에 수선화가 피는 3월에 수선화와 아울러 아름다운 거제 해안도 보고 동백꽃도 마음속에 담아 오는 삶의 여유를 기대해 본다.

/정대수(마산 진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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