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막걸리 전문 '양귀비꽃보다도 더…' 창원 상남점

막걸리도 한국 근현대사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일제강점기 식량 수탈로, 광복 이후 황폐해진 땅에 의한 식량 부족으로 막걸리 만드는 일이 금지됐다. 우리 쌀 소비를 늘리려고 막걸리를 권하는 지금 상황에 비춰보면, 1964년 박정희 정권의 쌀 막걸리 금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겠다. 동네 양조장에서 밀가루, 옥수수를 섞어 빚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이 틈에 소주와 맥주, 양주가 끼어들었고, 막걸리는 서서히 외면받게 됐다. 1971년 다시 쌀 막걸리가 나오지만, 술을 빚어낸 방식이 대동소이해 옛 맛을 잃었다는 비난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막걸리는 원기를 되찾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건 다름 아닌 주류 시장에서 점점 폭넓어지는 여성들과 젊은 층 입맛에 맞춘 막걸리다. 막걸리 본연의 맛과 정서를 좋아하는 이도 많겠지만, 옛것 그대로 머물러 있는 막걸리는 이제 눈맛과 입맛을 사로잡지 못한다. 이런 맥락에서 '과일 막걸리'는 새롭게 읽힌다고 하겠다. '전통' 막걸리에 생과일주스와 같은 '젊음'을 입힌 것이다.

딸기·키위 등 종류만 10가지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의 조영주(31) 대표는 과일 막걸리를 선보였다. 무려 10가지가 넘는다. 딸기, 키위, 블루베리, 파인애플, 복분자, 복숭아, 석류, 백년초, 녹차, 바나나, 망고 막걸리가 있다. 빨강, 분홍, 연두, 노랑, 연보라 등 다양한 색깔을 띠고 있다. /이동욱 기자
◇벌컥벌컥 마시지 마세요 = 창원 상남동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에 들어섰다. 긴 가게 이름은 본점이 진주 촉석루 근처에 있다 보니 짓게 된 것이다. 변영로 '논개' 가운데 한 구절이다.

조영주(31) 대표는 과일 막걸리를 선보였다. 무려 10가지가 넘는다. 딸기, 키위, 블루베리, 파인애플, 복분자, 복숭아, 석류, 백년초, 녹차, 바나나, 망고 막걸리가 있다. 빨강, 분홍, 연두, 노랑, 연보라 등 알록달록 색도 다양하다.

"막걸리 하면 비교적 40~50대가 많이 즐기잖아요. 달고 맛있으면서 생과일주스처럼 20~30대도 마시게끔 서너 개월 연구를 계속했어요." 과일 막걸리들은 줄지어 탄생했다.

과일은 막걸리와 함께 이틀 정도 냉장 숙성된다. 함께 들어가는 재료가 있는데, 공개할 수 없다. "갈아 넣은 과일이 막걸리와 혼합되면서 나중에 마실 때는 막걸리 맛과 과일 맛이 입에서 따로 느껴지지 않고 융화하게 하는 재료죠."

딸기, 키위, 블루베리, 석류, 바나나는 인기 메뉴 5종이다. 키위, 딸기 막걸리는 달곰함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석류 막걸리는 우려와 달리 시큼한 맛은 덜했다. 백년초가 막걸리의 걸쭉함을 상큼하게 해주기도 한다. 녹차 향이 진하게 나면서 다소 텁텁한 맛마저 닮은 녹차 막걸리는 40~50대가 많이 찾고 있다.

과일 막걸리는 맛있다고 벌컥벌컥 혹은 무턱대고 마시면 안 된다. 알코올 도수가 막걸리(6도)와 똑같기 때문이다. 1.5ℓ 값은 6000~8000원. 유리병에 담겨 나오는데, 따라 마시는 잔도 뭉툭한 유리 와인잔 모양이다.

형형색색…여성 기호 맞춰

◇지역 양조장과 함께해요 = 조 대표는 지역 양조장과 손잡았다는 데도 의미를 뒀다.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마트나 슈퍼마켓을 점령한 대형 주조장 막걸리에 못지 않은 지역 양조장 막걸리의 맛도 잊히는 건 안타깝다고 했다.

진주시 대곡면에 있는 대곡양조장 막걸리를 들여와 쓴다. 대곡양조장 막걸리는 다소 걸쭉하고 톡 쏘는 느낌에 고소한 맛이 강하다고 했다. 대곡양조장과 함께 새로운 술을 개발하고, 유통 경로를 넓히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젊은층 겨냥한 과일 청주도

◇막걸리의 정서를 담습니다 = 술은 "먹고 죽자"고 마시는 게 아니다. 조 대표가 추구하는 바도 이른바 '막걸리 카페'다. "나이를 막론하고 오시는 손님 대부분이 진탕 취하자는 사람보다는 가볍게 마시려는 사람들이죠." 속닥속닥,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다. 매개체는 역시 막걸리다.

"막걸리 자체로도 좋지만, 그 정서를 나눠보자는 취지였어요. 막걸리가 어르신들과 소통이 부족한 우리 또래가 서로 혹은 아버지 어머니 세대와 소통하는 방법인 거죠. 그래서 막걸리는 무궁무진합니다. 몸에 좋고 손님들이 원하면 끊임없이 개발될 수 있죠."

이는 조 대표가 감히 '과일 막걸리'를 전통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자신하는 까닭이다. 젊은이들이 갑갑해하거나 싫증을 느낄 수 있는 전통도 소중하기에 쉽게 접하게 한 것이다.

장사한 지는 올해 3년째다. 처음에 재미 삼아 시작한 일이 이제는 제법 커졌다. 지역 곳곳에 같은 이름으로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진주 인사동 골동품 거리(055-759-5459) 본점을 비롯해 진주 대안동, 대구 계명대 앞에도 있다. 이달 김해 내외동에도 들어설 계획이다.

모과, 유자, 석류 등 과일 청주도 맛볼 수 있다. 사과, 레몬, 석류, 복분자, 파인애플 등을 썰어 비율을 맞춘 소주와 탄산수에 절인 상그리아(sangria) 소주 등도 있다.

창원시 상남동(4-2번지 102호)에서 찾아가는 방법이다. 상남시장에서 은아그랜드타운 쪽으로 걸어오면 SK상남주유소가 나온다. 주유소 네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가 오른편 두 번째 건물 1층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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