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전통(傳統, tradition)은 과거의 것으로 잘못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과거의 것은 전통이 아니라 고유(固有, characteristics)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그 시대에 있었던 음식을 고유음식이라고 한다. 삼국시대 고유음식, 고려시대 고유음식, 조선시대 고유음식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니 <음식디미방>이나 <규합총서> 등에 기록된 음식과 만드는 법(레시피, recipe) 등은 바로 조선후기의 고유음식에 관한 것이다. 고서(古書)에 나오는 음식이든 전래해 오는 음식이든 그 맥(脈)을 이어 시대적 상황이나 문화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전 진화해 나가는 것이 바로 전통음식이다. 그리고 향토음식(鄕土飮食)은 지방에서 나오는 산물(産物)을 이용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음식을 말하는데, 이 음식이 전국화(全國化)되어 한 세기를 넘기면 전통음식으로 분류한다. 어쨌든 전통음식은 과거의 음식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음식의 세계화는 요원해진다.

특정 시대 특정음식 '고유음식'

영국의 전통음식 중에 샌드위치가 있다. 이 음식은 이미 로마시대 검은 빵에 육류를 끼운 음식이 가벼운 식사 대용으로 애용되었고, 러시아에서도 전채(前菜)의 한 종류인 오픈 샌드위치를 만들어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영국의 샌드위치 백작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영국의 햄 지방과 멀지 않은 켄트 주에 샌드위치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샌드위치 백작의 조상이 왕에게서 땅을 하사받아 대대로 살던 마을이다. 샌드위치는 1718년 태어나 1792년에 사망한 영국 정치가 존 몬테규 샌드위치 백작의 하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존 몬테규는 영국 샌드위치 가문의 4번째 백작으로 노름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1762년 어느 날 친구들과 모여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카드놀이에 열중하던 샌드위치 백작은 배가 고팠다. 그러나 마침 백작이 이기고 있어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하인은 로스트비프를 두 개의 빵 사이에 끼워 넣어 샌드위치 백작에게 가져다주었다. 샌드위치 백작은 하인이 가져다준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었으나 손에 기름이 묻지 않고 카드놀이를 계속 할 수 있어 이 음식을 즐겨 먹게 되었다. 그 후 이 음식은 샌드위치 백작의 이름을 따 샌드위치라 하였다. 이 샌드위치가 대처 총리 시절 점심때를 여유 있게 즐길 수 없는 상황에서 급속도로 판매되었고, 이때부터 영국 전역에는 8000개 샌드위치 전문점과 12가지 샌드위치가 팔리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하루에 13억 개 샌드위치가 팔리고 있다고 한다.

환경 따라 진화하는 '전통음식'

이 유명한 음식의 고향 영국 샌드위치 마을에서는 최근 샌드위치 만들기 위원회를 만들어 '어떤 재료로 샌드위치의 속을 채울까'하는 것을 연구한다고 한다. 우리도 영국의 샌드위치 못지않은 갈비, 비빔밥 등 다양한 음식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비빔밥을 전통이랍시고 냉면 그릇에 밥을 담고 그 위에 나물을 올려놓는 방법만 고수한다면, 우리 음식의 세계화는 요원한 일이 된다.

   
 
 
2008년 10월 1일 맨해튼 에디슨 볼룸 만찬에 필자의 제안으로 선보였던 접시형 비빔밥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비빔밥을 냉면 그릇이나 대접에 담지 않고 접시에 담아 전통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음식 세계화의 미래는 없다. 우리 음식을 세계화하려면 닫혀 있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전통음식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과 문화적 환경적 요인에 따라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교수(미국 캘리포니아 주 ASU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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