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공동탁주제조장 군항주

진해 막걸리 '군항주'를 만들어내는 진해공동탁주제조장에서는 효모가 발효하며 내는 소리가 여느 막걸리 양조장보다 경쾌한 듯했다. 자글자글, 부글부글, 지글지글……. 술을 안친 숙성실로 들어서자마자 들렸던 소리는 인상적이었다.

숙성실 안에는 10개 정도 통이 놓여 있었는데, 서로 먼저 걸쭉하게 잦아들겠다고 경쟁하는 듯 마냥 통에서는 끓는 소리가 쉼 없이 잇따랐다. 어른이 양팔을 펼쳐 감싸도 모자라는 큼지막한 통들은 야단스러운 소리와 달콤한 냄새로 숙성실 구석구석까지 채웠다.

진해 덕산동에 있는 진해공동탁주제조장은 1974년 설립됐다. 원래 근처에 있던 9개 동네 양조장을 합쳐 공동제조장이 꾸려졌다고 한다. 그렇기에 진해 공동제조장은 40년 가까운 세월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군항주'도 20년 정도를 지나온 상표다.

   
 
 
1974년 인근 9개 양조장 합쳐 설립…'군항제'서 제품 이름 따


◇걸쭉하게 구수한 맛 그대로 = 진해공동탁주제조장 오인섭 대표는 함안군에서 양조장을 40년 이상 운영한 아버지 곁에서 술 빚는 과정을 봐왔다고 했다. 대학에선 식품공학을 전공한 그는 간장이나 맥주 등 균이 발효해 만들어지는 음식을 연구하며 막걸리 제조에도 나름 비법이 생겼단다.

'군항주'라는 이름은 군항제에서 그대로 따와 붙였다. 이름 덕분인지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 특히 군항제 앞뒤로는 다른 때보다 잘 팔린다고 한다.

요즘 젊은 세대 기호에 맞춘 맑고 달콤한 막걸리들과 비교하면, '군항주'는 오히려 다소 걸쭉함이 돋보인다. 애초에 막걸리는 와인 잔에 마시는 고상함이 아니라 사발에 따르는 푸근함이었다.

   
 
 
매일 새벽 5시부터 고두밥을 찌고, 아침 7시 30분께 기사들은 술을 싣는다. 하루 전날 밤 숙성이 다 된 통을 점찍어 놓고, 다가오는 아침에 거른 술은 차곡차곡 병에 들어간다. 당일 거른 술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서 하루도 건너뛸 수 없다.

'군항주' 제조 비율은 쌀과 밀가루 7대 2다. 나머지 비율 1은 단맛을 내려고 막걸리 양조장 대부분이 넣는 전분당이다. 밀가루를 적당히 쓰는 건 맛 때문만이 아니다. 효모를 일정량 배양해 만들어지는 입국이 쌀보다는 균이 잘 퍼지는 밀 분말에서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내세우는 건 막걸리를 한잔 들이켰을 때 느껴지는 청량감이다. 오 대표는 "사이다나 콜라와 같이 인위적으로 탄산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효모가 발효하면서 생성된 탄산에서 나오는 맑고 시원한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사발에 따라 마시는 걸쭉한 막걸리…톡 쏘는 탄산 맛이 '일품'

◇"지역 토속 막걸리로 명맥 잇겠다" = ㄱ 업체는 연예인 모델을 앞세워 막걸리로는 처음으로 TV 광고까지 한단다. CJ와 롯데 등 대기업도 막걸리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이로써 막걸리 업계 질서와 유통 구조도 더욱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최근 막걸리 시장 변화와 지역 양조장의 현실을 함께 들여다 보면, 지난해 인기 상품 1위의 명성도 빛바랜 것이랄 수 있다. 오 대표가 털어놓는 말을 들어보자. "막걸리 붐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큰 공장들이 전국 규모로 유통망을 치고 들어오는데, 자그마하게 제조장을 꾸려가는 곳에선 매출이 오르는 걸 체감 못하고 있죠."

   
 
 
경제력 있는 몇몇 업체가 큰 마트부터 구멍가게까지 점령하고 있으니 중소 양조장은 더욱 어려워졌다. 막걸리의 지역적 특성과 다양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외국 수출 길은 생각할 수도 없고 오래된 공장이라 믿고 꾸준히 찾아주는 동네 주민들마저 외면한다면, 지역 특성은 온데간데없는 획일한 막걸리만 판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세월이 흐르면서 진해 공동제조장도 영세해져 버렸다. 1970~80년대는 함께 일한 사람이 30명가량이었는데, 지금은 배달까지 포함해 모두 5명이 일하고 있다. 그나마 선선해 운동하기 좋은 봄과 가을이 성수기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나 모여서 체육대회를 여는 이들이 자주 찾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 대표는 큰 공장 막걸리와 차별화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지역 토속 막걸리로 명맥을 잇기 위해서다. "일본에는 정종(사케) 종류가 엄청납니다. 지역마다 전통 제조법을 고수하고 있어서죠.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세대를 아우르는 맛을 찾고, 지역에서만큼은 인정받는 독특한 지역색을 지닌 술로 남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군항주'는 진해지역 슈퍼마켓이나 마트 등에서 살 수 있다. 값은 한 병에 1300원(1.2ℓ), 900원(0.75ℓ). 한 상자는 각각 1만 9500원, 1만 8000원이다. 안민터널 앞 네거리에서 진해시청 방향으로 2㎞ 정도 가다 보면, 오른편에 덕산초등학교가 보인다. 학교를 끼고 골목으로 들어가 덕산철길 쪽으로 직진하면, 덕산지구대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진해공동탁주제조장이 있다. 진해시 덕산동 76-6번지. 055-551-6260, 6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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