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들판의 배추밭엔 배추들이 그대로 얼어 제자리에서 뭉개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말라버린 겉잎을 비집고 속을 들여다봤더니 살얼음 가득한 속잎이 바스러질 듯 그 속잎을 싸고 힘겹게 겨울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배춧값이 안 맞아서 뽑지도 않은 채 버려진 배추밭을 보면서 깊어졌을 어머니의 한숨처럼 축 늘어진 겨울 밭에 앉았습니다.

엊그제 내린 눈으로 월년초의 잎들도 얼어붙어서 냉이도, 개망초도, 달맞이꽃도 납작 엎디어 서릿발을 견디고 있습니다. 지난가을 탐스런 꽃을 피워 올렸을 산국의 메마른 꽃대를 지줏대 삼아 사마귀가 집을 지어 놓고 바람에 아슬아슬 흔들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어머니가 가을 내내 캐다 모아서 담근 고들빼기김치가 유난히도 맛있었습니다. 통통한 뿌리를 씹을 때 나는 아삭거리는 소리랑, 생밤의 달콤함과 고들빼기 잎의 쌉싸래한 맛이 어우러져 얼마나 입맛을 돋우는지요. 몇 날 며칠을 고들빼기김치하고 밥을 먹었습니다.

   
 
 
국화과의 고들빼기는 두해살이풀로서 한여름에 샛노란 꽃을 피워서 들판을 환하게 하는 들풀인데요. 이른 봄에 연한 싹이 날 때부터 인기가 있어 씀바귀와 함께 봄나물로도 많이 찾습니다. 각종 비타민이 많이 들어 있어서 미용에도 좋지만 쌉싸래한 사포닌의 맛이 입맛을 돋우어서 봄나물로 그만입니다. 잎줄기를 따면 하얗게 나오는 즙에 쓴맛을 내는 성분이 들어 있는데 그 성분이 위벽을 보호하고 소화를 도와서 위의 기능을 튼튼하게 한다고 합니다.

여름에 꽃이 한창 피고 나면 그때부터 뿌리에 살이 오르기 시작하는데 가을걷이 끝나고 나면 가장 맛있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어릴 때는 가을 들판에 나가 메뚜기 잡기와 고들빼기 캐기로 하루를 보내기도 했는데요. 요즘은 모두 어머니 혼자의 일입니다.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에게 한통씩 들려 보내려면 가을 내내 쉬지 않고 캐 모아야 가능했을 것입니다. 요즘은 열량이 거의 없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데 좋아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가 그만입니다. 특히 정신을 맑게 하는 성분이 들어 있어 수험생들에게 먹이면 집중력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칼슘·인·베타카로틴 등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서 웰빙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을뿐더러 한방에서는 약사초(藥師草)라 하여 해독·장염·두통·흉통 등을 치료하는 약재로도 씁니다.

인간의 건강한 삶을 되살리는 해법이 자연 속에 있다는 이치가 가장 강인한 우리 들풀들의 삶속에 녹아 있습니다.
 
   
 
추위와 가뭄 박토 굶주림을 잘 견딘 들풀들이 인간의 몸을 살리는 귀한 약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힘든 과정 견디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없음을 겨울 들판 빈 밭에 앉아보면 숙연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장한 겨우살이가 꽃으로 만발한 봄 들판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의 겨울에 대한 해답도 찾아볼 일입니다. 새해를 맞고 덕담을 나누며 올봄에는 무엇으로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 볼지 한 번쯤 성찰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박덕선 숲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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