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씨의 도내 맛 체험 일기

"경남에서는 라면을 끓여 먹어도 맛이 없더라." 일 때문에 전국을 돌아다니는 한 지인에게 들은 얘기다. 서울이 고향인 그는 지역의 다양한 먹을거리에 대해 늘 기대하는데, 유독 경남에선 실망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했다. 전라도에서 한 상으로 푸지게 내놓는 규모의 밥상(?)을 안다면, 그의 심정을 이해할 만도 하겠다.

하지만, 그가 경남에서 마음이 상한 까닭은 구석구석 다녀보지 못해서다. 비교적 전국으로 알려지진 않았으나 경남에도 실속 있는 음식들은 많다. 소문만으로 알던 맛을 직접 느끼고자 지난해 틈틈이 경남 이곳저곳에 다닌 여행자(가명·45·여) 씨도 그렇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가 펼쳐보인 낡은 일기장에는 몇몇 '경남의 맛'에 관한 글이 눈에 띄었다. 그의 일기 세 편을 옮겨왔다. 올해에는 그와 같이 겨를이 있을 때마다 '경남의 맛'을 찾아나서는 일을 해봄직도 하겠다.

절밥의 담백함 고스란히 담긴 '양산 산채 비빔밥'

2009년 4월 1일. 봄 냄새. 곳곳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봄기운 덕분인지 갑자기 풀내음이 그리웠다. 남편과 양산 통도사로 발길을 옮겼다. 산나물 가득 어우러지는 절밥의 담백함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통도사 매표소 들머리에 있는 ㄱ 식당. 산채 전문을 내세워온 곳으로 30년 가까이나 됐다고 한다. 취나물, 미나리, 고사리, 도라지, 표고버섯 등 산골짜기와 같이 습한 곳에서 자란 다섯 가지 이상 나물을 고슬고슬 지은 밥에 넣어 고추장에 쓱쓱 비벼 먹었다.

     
 
 

산채 비빔밥이 그릇 안 어울림이면, 산채 정식은 한 상의 조화다.

파전과 곤달비장아찌, 도라지나물 등 찬을 깔끔하게 곁들여 푸근함과 맛깔스러움을 느끼겠다. 밥값은 비빔밥 두 그릇으로 1만 원을 썼다. 여기 말고 근처에 ㅌ 식당, ㅂ 식당 등 산채 정식을 즐길 수 있는 데는 많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식후 산책이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차를 타고 주차장까지 올라가는 길은 고불고불 운치가 있었다. 딱 그 규모만큼이나 절이 품을 아량도 여기저기 거닐면서 헤아리게 됐다. 조금 서둘러 와서 감림산 자락이나 영취산 능선 등을 따라 걸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속풀이에 그만인 '하동 섬진강 재첩국'

섬진강에서 재첩을 채취하는 모습 /하동군 제공

2009년 6월 3일. 사라진 소리를 찾아서. 도심에는 어느 순간부터 목이 쉬어라 "재치국(재첩국) 사이소"를 외치던 아지매들의 목소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하동에서는 아직도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동에는 요즘 재첩이 제철이란다.

나와 남편은 재첩국 마니아다. 속을 풀어주는 데는 이만 한 게 없다고 여긴다. 달마다 거르지 않고 냉동한 재첩국을 주문해 집에서 끓여 먹고도 있다. 하동에서는 재첩이란 말보다는 갱조개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다. 재첩은 하동 사투리로 갱조개라고 부른다. 하동 나들목에서 하동 읍내로 가다 보니 강변에 ㅇ 집이 보였다.

3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이 집에서 주인장이 이것저것 재첩에 관한 것들을 알려줬다. 재첩은 민물과 바닷물이 마주치는 강어귀에서 많이 잡힌다. 하동 재첩이 이름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한창 많이 나올 때는 강바닥을 긁기만 해도 나왔다고 한다. 긴 막대 긁개인 거랭이가 재첩 잡는 데 쓰인다. 읍내 ㅇ 식당, ㄷ 식당 등도 오래된 집들이다.

3만 원 남짓으로 재첩국과 회무침을 배불리 먹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하동 시외버스 터미널 앞에서 갱조개국을 정성스레 내놓고 파는 할머니한테서 사왔다. 조금 진한 듯해서 물을 타서 끓였는 데도 깊은맛이 우러나왔다.

예전 그 명성 그대로 '김해 진영읍 돼지갈비'

2009년 8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0일 정도 지났다. 아픔도 아닌 무언가가 쉽사리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 걸 보면, 스스로 참 묘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는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귀향하고 나서 고향인 김해시 진영읍의 안부도 물었다. "요즘 제일 궁금한 것이 진영갈비 좀 팔리는지, 진영단감은 사가는 사람이 많은지" 하고 말이다.

한때 진영은 갈비의 고장이기도 했다. 단감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데, 가족과 오순도순 나눠 먹던 옛날 그 갈비 맛을 못 잊는 사람도 제법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예전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동창원 나들목에서부터 진영 읍내로 들어가기까지 도로 주변에는 갈비집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른바 '갈비촌'이다.

갈비촌 가운데 ㄱ 갈비, 근래 아파트가 많이 들어선 신도시 쪽에 있는 ㅅ 갈비, 읍내 시장통에서 만날 수 있는 ㅎ 갈비 등이 옛 명성을 되찾으려는 기세를 보이고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봉하마을에 들르고, ㅅ 갈비에서 돼지갈비를 시켜 구웠다. 문전성시였다. 넉넉한 양으로 목살도 섞지 않고, 칼집을 내 연한 육질과 양념 맛에 반하게 됐다. 아이들은 또 오자고 졸라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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