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고등학교 때 조선일보의 열렬한 애독자였다. 국제면과 해외석학의 강연, 문화면의 파격적이고 다양한 소식, 빠뜨릴 수 없는 스포츠면까지…신문이 좋아 대학신문사에 들어갔다. 수습딱지 달고 처음 접한 시위현장은 1999년 겨울 서울에서 열린 ‘2차 민중대회’였다.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반대’ 전단을 나눠주는 대학생들, ‘농가부채 탕감’머리띠를 두른 농민, 같은 색 조끼를 입고 담배 피우는 노동자들까지… 모두 붕괴직전인 경제에 대한 분노와 책임있는 정부의 대책을 바라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시위대는 거리로 나갔다. 이때 신문사 선배들이 ‘손 꼭 잡고, 운동화 단단히 매라’는 주문과 우리대학 깃발을 눈여겨보고 뛰라는 말을 들으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시내 한복판을 걸었다. 차가 막혀 교통소통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서민들의 절박한 사정보다 덜 한 것 같고, 거리에서 시위대를 지켜보는 시민들도 ‘경제파탄, 김대중은 반성하라’는 구호에 박수와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행진도중 말끔히 차려입은 여경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플래시가 터졌다. 발걸음이 느려진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와 왼쪽부터 시작된 비명소리는 청바지에 하얀 운동화를 착용한 경찰과 함께 골목에서 튀어나온다. 손잡고 있던 신문사 선배와는 순식간에 멀어져 나는 정신없이 ‘뛰었다’. 왜 나는 이렇게 죄인처럼 뛰는가. 왜 저 사람들은 정당한 요구를 하는 시위대를 죄인 마냥 토끼몰이 하나.
다음날 신문을 펼쳤다. 이날부터 조선일보를 보는 이유가 바뀌었다. 지면에는 폭력적 전투경찰의 모습은 오간데 없고, 다소곳한 여경의 사진과 전투경찰들의 폭력에 맞서 쇠파이프를 휘둘렀던 아저씨들이 격렬시위의 주인공이 되어있을 뿐이었다. 그 날, 시민과 경찰이 난투극을 벌인 건 사실이었으나 몇 천명 서민들의 외침은 없고 ‘교통정체’와 폭력시위만 도배되어 있을 뿐이었다.
지난 8월, 한반도의 반을 다시 두동강 낸 주범도 조선일보였다. 노동자와 자본가를 분리시키고, 대다수 통일을 원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귀신같은 편집술과 아전인수식 인터뷰로 나라를 분리시키는 것도 조선일보였다. 이 땅의 많은 때묻지 않은 대학생기자들과 바른말하는 대학생들도 조선일보를 본다. 난 진정한 기자가 되고 싶다. 맘 같으면 당장 조선일보를 끊고 싶지만 어떤 왜곡이 있는지, 본 받지 말아야 할 기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오늘도 조선일보를 열심히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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