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빛 닮은 비오리 유유자적 자맥질인간사 잊고 맛보는 여유로운 행복

둘레만 4km가 넘는 고성 대가저수지는 경남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다. 이 곳에는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누군가 오라고 한 적도 없는데 때가 되면 찾아오고, 때가 되면 떠나버리는 이곳을 그들만의 만남의 광장이라고 부르고 싶다.

하얀 눈이 순결을 상징하듯 겨울 빛을 닮은 그들은 깨끗함 그 자체이다.

시베리아 얼음나라 전령인 기러기를 선두로 수면성 오리류의 대표적인 종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고방오리, 쇠오리, 논병아리, 홍머리오리, 흰죽지, 알락오리, 댕기흰죽지, 물닭, 꼬마물떼새, 쇠백로, 중대백로, 무리에서 빠져나온 가창오리 등 드물게는 겨울의 여왕인 고니 가족들도 만남의 광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호사비오리.
이들 가운데에서 끼리끼리 무리를 이루고 짝을 지어 유유히 물 위를 떠다니거나 휴식을 취하는 모습 외에도 줄지어 자맥질을 하며 먹이 활동에 여념이 없는 여인의 자태와도 같이 아름다운 새 비오리들 120여 마리의 모습이 만남의 광장에선 단연 돋보인다. 비오리는 물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잠수성 오리이며 한국에는 4종이 있는데, 바다비오리를 제외한 흰비오리, 비오리, 호사비오리가 이 곳 만남의 광장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다.

만남의 광장 식구들 모두가 멋쟁이지만 그 중에 가장 몸집이 작은 흰비오리는 머리가 검정색과 흰색의 잘 정돈된 댕기 모양으로 세련되고 깜찍하여 패션스타일로는 어느 새에게도 뒤지지 않는 녀석들이다. 붉은 부리 끝에 노란점이 있는 세계적인 희귀조이자 천연기념물 448호로 지정된 호사비오리 3~4마리가 7년 넘게 해마다 만남의 광장을 찾는 비오리 무리 속에서 길게 뻗은 댕기와 옆구리의 선명한 비늘무늬를 자랑하듯 힘차게 날갯짓을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행복해진다.

흰비오리.
옆구리에 비늘무늬도 없고 부리 끝에 검은 점이 있는 비오리는 기사년(1629) 선주부사로 부임한 현주 조찬한이 쓴 시 화압(花鴨)에 잘 나타나 있다(고어古語로 빗올히). 시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반쯤 빗겨 얼음 위에 몸 반은 푸른 물에/ 비오리 한 쌍 날고 자맥질에 분주하구나/ 오로지 바라기는 깊고 얕은 물속 줄 지을 뿐 모를레라 인간 세상 염량이 있는 줄을.'

어느 겨울 잠시 정사를 떠나 비오리를 관조하면서 심신의 고단함을 달래고 있던 현주의 눈에 보이는 자연의
 
   
 
정경이 인간 세계에서는 얻을 수 없는 마음의 평화요 안식처였으며 인간 세계의 염량과는 전혀 유리된 겨울 강가의 비오리 한 쌍이 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으리라. 우리는 늘 부족하다 불평하며 더 갖고 싶어 불만이다.

자연은 이러한 우리들에게 풍요로운 마음을 갖게 한다. 풍요로운 마음이 여유로움을 낳아 우리의 마음이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번 주말 만남의 광장에서 가까운 가족들과 새롭고 뜻 깊은 만남을 가져봄은 어떨까?

/김덕성(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 모임 전 전국 회장·고성 철성고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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