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장수 상징 조선말기 단골 장식 무늬여름밤 모기·해충 퇴치용 천연 살충제

박쥐하면 우리는 젖먹이동물과 새의 중간에서 유리한 쪽으로 붙는 간사한 동물이나, 영화 속 드라큘라에 나오는 흡혈귀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박쥐를 나쁜 이미지로만 보고 있을까?

산청 겁외사 대웅전 단청에서는 푸른 연을 잎에 문 채 동자승을 태운 박쥐가 날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허균 저)란 책에 '불교에서 길상과 다복을 상징하거나 숭앙하고 존귀하게 여기는 대상'을 일러 '칠보'라 하는데 그 가운데 박쥐가 있다.

산청 겁외사 단청에 있는 박쥐. 청련을 문 채 동자승을 태우고 날고 있다.
서양과 달리 동양 문화권에서 박쥐는 나쁜 이미지가 아닌 오히려 복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태국에선 장수를, 인도네시아 발리 섬에선 풍년을 상징한다. 중국에선 박쥐를 박쥐 편( ), 박쥐 복( )해서 '편복'이라 하는데, 박쥐의 '복'과 행복의 '복(福)'이 발음이 같다고 하여 복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겼다. 또한 장수와 강한 번식력 때문에 자손 번창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중국의 영향으로 조선 말기부터 옹기, 자수, 경복궁 굴뚝, 가구 따위 곳곳에 박쥐 그림과 무늬를 썼다. 우리나라 하나뿐인 장석 전문 박물관인 진주시향토민속관에 가 보면 옛 가구에 나비와 박쥐 무늬가 가장 많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나무가구에 있는 박쥐 모양 들쇠. 진주시향토민속관에서.
엄소연의 박사 학위 논문 <조선 후기 동물 상징 연구>를 살펴보면 박쥐는 박물관 소장품의 그림과 무늬에 나타난 단일 동물 48종 2348건 가운데 나비·용 다음으로 많이 등장한다. 또한 박쥐는 조선 후기에 나비와 함께 유물 속에 새롭게 등장한 동물이라 한다. 조선 후기 사람들의 복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여러 유물 속에 박쥐로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사람들은 박쥐의 나쁜 이미지로 흡혈박쥐를 쉽게 떠올리는데 흡혈박쥐는 중남미에만 그것도 3종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로 잠자는 가축의 피를 빨아먹는다. 우리나라 박쥐는 모두 벌레를 잡아먹는데 분량이 자기 몸 절반이나 되는 모기나 해충을 하룻밤에 잡아먹는다고 한다. 한여름밤 모기에 시달리는 우리들에게 박쥐가 더불어 산다면 살충제를 덜 뿌리고 자외선 감전 장치도 덜 쓰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그림책에선 어떻게 보고 있을까? <어두움을 무서워 하는 꼬마박쥐>엔 박쥐를 세상에
 
   
 
서 가장 어둠을 좋아할 것 같은 존재가 아닌, 오히려 어두움을 무서워하고, 그 무서움을 극복하는 존재로 보고 있다. 그리고 <거꾸로 박쥐>에서는 박쥐를 통해 자기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데서 벗어나 또 다른 시각에서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인류가 구석기 시대 동굴에 살기 전부터 동굴에 살았던 박쥐들, 사람들과 가장 오랫동안 사귄 동물은 박쥐가 아닐까? 여러분은 지금 박쥐가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는가?

/오광석(산청 신안초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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