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대신 밀가루만 사용…2007년 대한민국 전통주 품평회서 입선

김해 상동면의 아침은 구수한 밥 냄새가 알린다. 솔솔 풍기는 밥 냄새는 시골에선 흔한 것이고, 익숙한 풍경이다. 상동면 밥 냄새는 다름 아닌 막걸리를 위한 것이다. 새벽 4시에, '상동탁주'를 만드는 상동양조장의 하루는 시작한다. 보통 양조장이 그렇다. 아직 마을 주민들도 이불 속에서 뒤척일 이른 시간, 양조장 사람들은 중대하고 고된 일을 해낸다. 그래서 오후에 양조장을 찾으면, 좀 한가해 보이기도 한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양조장은 일도 안 하는가 보다'고 생각할 정도다.

상동양조장 박대흠(53) 대표는 젊은 친구들이 노는 줄만 알고는 양조장에 왔다가 떠난 적도 많았다고 했다.

김해 '상동탁주'를 만드는 상동양조장 박대흠 대표가 두 차례 안쳐 하룻밤만 지나면, 상품이 될 막걸리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이 탁주는 2007 한국 전통주 품평회에서 입선을 했다. /이동욱 기자
◇김해 대표 막걸리 = 상동양조장은 간판이 없다. "기술이나 맛이 좋아야 손님이 많지, 간판이나 보이는 게 좋다고 사람들이 찾는 건 아니잖습니까. (웃음)" 허울에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가내수공업맨치로 조그마합니다. 도시는 막걸리 붐이라고 신문, 방송도 떠들지만, 지역에는 영향이 없어요. 수요도 언론이 밝힌 것과는 차이가 큽니다." 거슬러 가면, 상동양조장은 일제 강점기에 생겼다고 한다. 박 대표는 1984년 양조장을 넘겨받았다.

심옥주(28·김해 구산동) 씨는 "내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상동면에 사시는 부모님은 제사상에 청주 대신 상동탁주를 꼭 올리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상동탁주는 오랫동안 김해 사람들에게 알려진 듯했다. 김해 대표 막걸리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투박한 달곰함? = 상동탁주 맛은 어떨까. "우선, 뒷맛이 깔끔해야죠. 사람마다 제 성격이 있듯이 막걸리도 성격이 있는 놈입니다. 온도·습도에 예민하니 잘 맞춰야죠." 효모가 발효돼 통 안에서 부풀어 오른 막걸리 앞에서 박 대표는 설명을 이어갔다.

"(막걸리를 가리키며) 손을 한 번 대 보이소." 따스함이 약간 느껴졌다. "이놈이 부글부글 끓어 열이 50℃까지 오르는데, 이걸 30℃ 이하로 냉각시키죠." 취재 당일 부슬비가 내려 쌀쌀했다. 이럴 때는 온도가 안 떨어지게 난롯불로 숙성실 공기를 데운다.

양팔을 뻗어도 감싸지 못할 만큼 거대한 솥도 보였다. 고두밥을 찌는 솥이다. 그 옆 창고에는 밀가루 포대가 쌓여 있었다. 밀가루만 쓴다는 게 상동탁주의 특징이다. 쌀만 쓸 때 막걸리에 부드러움이 있다면, 밀가루는 좀 더 톡톡 쏘는 맛을 만든다. 다소 투박함이 있으면서도 달곰한 맛이다. 맛은 밀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향긋함과도 어울린다.

◇노무현과 4대 강 = 상동양조장을 통해선 두 가지 정치적 관심사도 엿볼 수 있다. 상동탁주는 한때 김해 막걸리라는 상징을 담고자 '옛 가야'로 상표를 바꾸기도 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봉하마을에서 즐겨 마셨을 때 이름이 그랬단다. 하지만, '양조장 주인이 바뀌었다, 죽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김해 사람들에게는 상동탁주라는 이름이 익숙해서다. 그래서 지금은 원래 이름을 쓰고 있다.

신어산, 장척계곡, 그리고 대포천. 상동양조장 근처에선 하천과 들판이 어우러진 평온한 경치도 즐길 수 있다. 특히, 대포천은 주민들이 직접 수질 정화 운동을 벌여 오염된 물을 1급수로 만든 곳이다. 물이 좋다는 건 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이다.

그렇지만, 난개발도 심하다. 박 대표는 공장만 200개가 넘는다고 했다. 주말이면 조용한 2차로 도로도 평일 복잡하기 그지없다. 아울러 근래 최대 쟁점이랄 수 있는 4대 강 공사로 농사짓는 터전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마을 주민들의 시위도 잇따르고 있다.

◇재도약하는 상동탁주 = "양조장 맥을 잇는 사람치고 부유한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진짜 전통을 찾는 사람들이겠죠. 대형 업체는 광고도 활발히 하지만, 작은 양조장은 살길을 찾기 어렵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모자라서 못 팔 정도로 상동탁주는 인기를 끌었단다. 2007년 제1회 대한민국 전통주 품평회에서는 입선도 했다.

박 대표는 내년을 상동탁주 재도약의 해로 바라고 있다. 상동탁주는 밥이랑 누룩을 두 차례 물에 안쳐 닷새 동안 18~19℃에서 숙성한다. 이전 과정을 들여다보면, 네 사람이 함께 고두밥을 찌고 가루처럼 부스러뜨린다. 이후 밥은 바람으로 식히고, 사온 누룩을 여기에 뿌려 섞는다.

   
 
 
이걸 습기가 차지 않게 22~23℃로 이틀 동안 배양한다. 이때 효모는 1마리가 5000마리까지 낳는 위력을 보인다. 배양을 거친 것은 물에 안치고, 하루 지나 덧밥과 물을 다시 넣어 나흘간 기다린다.

상동탁주는 김해 시내 농·축협, 점포 등에 하루 60상자 정도 나가고 있다. 직접 양조장에서 사거나 전화 택배 주문도 된다. 0.75ℓ와 1.2ℓ 두 가지가 있는데, 병당 900원, 1200원이다. 한 상자 2만 원으로 각각 20병, 15병씩 담긴다.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 634번지(상동면사무소에서 10m, 상동반점 옆 골목 두 번째 집). 055-323-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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