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맛있는 게 참 많다. 나무에 열린 모든 것이 익고, 논밭에 있는 것도 맛을 낸다. 약방의 감초처럼 늘 식탁 어딘가 놓여 있지만, 존재감을 쉬 드러내지는 않았던 재료를 하나 소개한다.

무. 배추와 함께 우리나라 사람이 즐겨 먹는 채소다. 무는 모양이 곧고 갈라지거나 터지지 않고, 잔뿌리가 많지 않은 게 좋다. 봄 여름 무는 싱겁고 물러 맛이 덜하고, 가을에 나오는 무가 달고 맛이 좋다. 겨울에는 동치미, 봄에는 깍두기, 여름에는 총각김치나 물김치, 가을에는 굴 깍두기로 만들어진다.

지금처럼 선선해지는 가을에 나오는 무는 생채, 나물, 조림으로 좋고, 밥에 넣어 양념장과 썩썩 비빈 무밥이나 무시루떡도 별미다. 이뿐일까. 매운탕이나 국에 시원한 맛을 내는 데 무를 따라갈 재료는 없는 것 같다.

가을 무를 곱게 채 썰어 말려둔 무말랭이, 이걸 된장이나 고추장에 넣어두면 장아찌로 변한 건 사계절 찬이 된다. 이때 남는 무청을 말리면, 시래기 나물, 국, 조림 등에 쓸 수 있다. 무는 어느 한 부위 버릴 것 없이 살뜰한 찬이다.

얇게 썬 무에 밀가루와 달걀을 묻혀 구워 전으로 만들어도 된다. 초절임을 해서 두면, 고기 먹을 때 곁들이기에 알맞다. 여러 색의 채소를 무로 감싸 말아주면, 색 고운 멋진 요리로도 탄생한다. 참으로 활용이 다양해 무로 만든 음식 이야기만 해도 지면을 가득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무는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즐겨 먹는다. 무의 색과 모양이 다양한 서양에서는 그리 즐겨 먹지는 않는다. 서양에서는 주로 형편없는 식탁이나 가난을 상징하는 재료로 표현됐다.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이라고 알려졌다. 기원전 200년 피라미드 내부 비문의 문구에 무에 대한 기록이 있고, 2세기경 제갈량이 원정을 가는 곳마다 순무를 심어 군량으로 삼아 무를 '제갈채'라 했단다.

<후한서> 기록에는 장안에 적이 들어와 궁전을 둘러싸고 있을 때 궁녀 1000명이 무를 먹으면서 끝까지 저항해 '수절채'라 불렀다고 한다. 흔히 밉게 생긴 여자의 다리를 '무 다리'라고 놀리곤 하는데, 한시(漢詩)에서는 미끈한 여자의 팔을 무에 비유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들어와 삼국시대부터 재배됐으나 널리 퍼진 것은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무는 활용도만큼이나 많은 영양소와 효능을 가진 식품이다. 예부터 무를 많이 먹으면 속병이 없다고 할 정도로 위장에 좋은 식품이다. 수분과 다량의 비타민 C와 A, 여러 효소가 함유돼 있다.

<본초강목>에는 무가 소화를 촉진하고, 독을 풀어주며 오장을 이롭게 하고, 몸을 가볍게 하며 살결이 고와지게 하고, 담을 제거하고 기침을 그치게 하며 각혈을 다스리고 속을 따뜻하게 해서 빈혈을 보한다고 기록돼 있다.

   
 


무는 성질이 온(溫)하므로 몸을 따뜻하게 하며, 혈액 순환을 좋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무 하나 사서 국, 조림, 생채 등 어느 것이든 자신 있는 요리 한 가지면, 건강을 챙기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신정혜(재단법인 남해마늘연구소 기획연구실장)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