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는 혼자 고민하고 있었다.

‘한비의 등장은 뜻밖이다! 그를 감쪽같이 제거할 방법이 없을까?’

즈음이었다. 이사의 고민을 제일 먼저 알아차린 인물은 요가였다. 그는 구경(九卿) 중의 한 명이었다. 그 역시 한비 때문에 밀려나지 않을까 걱정하던 사람이었다.

이사를 찾아왔다.

“승상, 앞으로 어떻게 하실 참이오?”

“대왕의 신임이 저토록 두터운데 나로선들 별 수가 있겠소.”

“그렇지가 않습니다. 조정 대신들이 모두 힘을 합치면 한비의 등용 쯤은 막을 수가 있지요.”

“어떻게?”

“우선 대왕께서 한비를 아끼고 좋아하면서도 그를 아직도 등용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한나라 공자라서 아직도 신용할 수 없다고 보고 계실까?”

“바로 그겁니다. 바로 그 점을 부풀려서 대왕께 아뢰도록 합시다. 무슨 얘기냐 하면, 한비를 등용해봐야 한나라의 이익만 생각하고 진나라를 위한 계책을 세우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침소봉대해서….”

“대왕께서 그 점을 곧이 들으실까요? 저토록 한비한테 빠져 계시는데.”

“한비를 등용하지 않고 오래도록 진나라에 잡아 두었다가 나중에 한으로 돌려보내면 그 역시 원한을 품고 진나라를 멸망시킬 모든 지모를 짜낼게 아닙니까?”

“그건 결국은 서둘러 그를 등용하라는 말씀 아니오?”

“승상께선 한비가 처음 왔을 때 대왕께 무슨 계략을 드렸는지 알고 계십니까?”

“한나라를 침략하지 말도록 대왕께 그 이유를 누누이 설명하고 있었소.”

“그래서 한비를 중용해선 안된다는 논리가 가능해지는 겁니다. 이 때 우리는 한비한테 가만히 사람을 보내 진왕이 당신을 죽일 지도 모른다는 귀띔을 주는 겁니다.”

“놀라서 한비가 달아난다면 다행일 테지만 도망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요?”

“그 때를 대비해, 대왕의 귀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한비가 말한 것처럼 왕에 대한 비방을 만들어 놓으면 됩니다.”

“그런 풍문을 대왕께서 믿어주실까요?”

“그렇대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야 없지 않습니까. 어전 조회 때마다 한비를 비방하면 대왕께서도 최소한 그를 의심해 등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밑져야 본전이니 우선 그렇게 해 봅시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던 요가의 입가에는 잔인한 미소가 흘렀다. 그는 문득 돌아서며 이사한테 말했다.

“만일 말씀이오. 한비가 죽게 되면 유세의 어려움을 설파하고서도 끝내 자신은 비명에 죽어, 세난(說難)의 어려움을 헤쳐나오지 못한 것이 되는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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