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산물 활용해 손으로 만드는 막걸리…6년 전 이웃·관광객 요청에 판매 시작

'보물섬' 남해의 잃어버린 보물. 한때 이 열매로 자식 대학까지 보냈다고, 나무에는 '대학나무'라는 별칭도 붙었다. 유자 이야기다. 유자에 얽힌 전설은 장보고 때까지 거슬러 간다. 그가 당나라 상인에게 유자를 선물 받고 돌아오던 중 거센 물결을 만나 남해에 정박했다고 한다.

이때 도포 자락에서 유자가 떨어져 남해에서도 유자가 자라났다는 얘기다. 특히, 남해 유자는 따스한 날씨와 바람 덕에 독특한 품종이 됐단다. 우스갯소리이지만, 이런 남해 유자의 인기(?)를 반영하듯 가수 하춘화는 1973년 '유자 따는 남해 처녀'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남해의 또 다른 보물, 마늘을 원료로 막걸리가 나왔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만큼 고장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까닭이겠다. 이 대목에서 잃어버렸다는 보물, 유자를 향한 연구도 따랐으면 한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그런데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조막심(81) 할머니가 담그는 '유자잎 막걸리'는 한편으로 이런 아쉬움을 없애기도 한다.

◇'유자잎' 막걸리 = 조막심 할머니가 장사를 하는 '시골 할매 막걸리' 집은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에서도 가장 낮은 곳에 있다. 암수바위를 둘러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바위 맞은편 '시골 할매 막걸리' 집 앞을 지나가면서 안을 기웃거려 봤을 것도 같다.

이 집에서 스무 걸음도 채 못 가면, 남자 성기와 비슷한 숫바위와 배가 부른 여자가 비스듬히 누운 모습을 닮은 암바위가 보인다. 암수바위에선 '시골 할매 막걸리' 집 뒤로 울긋불긋 물든 설흘산도 보였다.

다랭이마을은 익히 알려진 대로 설흘산에서부터 바다까지 이르는 경사에 계단식 논을 일궈놓은 곳이다. 빼어난 풍광으로 많은 사람이 마을의 정취와 더불어 산, 바다를 즐기려고 찾는다. 마을 구석구석 볼거리가 있다. 배우 신현준이 한없이 망가졌던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세트장도 볼 수 있다. 좁은 길로 차가 들어설 순 있지만, 골목을 따라 걸어야 운치가 있겠다.

'시골 할매 막걸리' 집에선 바다와 마주한다. 설흘산을 오른 사람들이 등산을 마치고, 이곳에서 목을 축이고 쉬어가는 이유다. 다른 이유는 바로 막걸리다. 유자잎 막걸리. 막걸리를 만들면서 유자잎을 넣게 된 사연을 조막심 할머니에게 들어봤다.

유자잎 막걸리를 만든 조막심 할머니.
"인절미 만들 때도 유자 열매를 갈아 넣기도 하거든. 향도 맛도 좋아 '막걸리에도 넣어볼까?' 생각했던 거지. 근데, 너무 시고 맛이 없던 기라. 그래서 대신 유자잎을 넣었는데, 상큼하고 괜찮다 해서 계속 하게 됐지."

할머니는 다랭이마을에 17살 때 시집와 막걸리를 담그게 됐단다. 시집에선 친정집과 달리 식구 모두 술을 좋아해서 조금씩 만들었다. 그러던 게 마을 일대가 테마 마을처럼 조성돼 먹을거리가 필요하다는 등산객과 마을 사람들의 권유로 장사로 이어졌다. 올해 6년째다.

처음엔 손님들도 막걸리 한 잔에 마늘쫑, 풋고추와 된장, 김치로 요기를 했는데, 지금은 안주 수도 늘었다. 집에서 직접 담근 멸치액젓으로 간을 한다는 해물파전, 두부김치, 해물된장찌개, 콩국수, 가오리회·찜이다.

막걸리는 유자잎을 넣어서인지 약간 녹색 빛깔을 띠는 것 같았다. 첫맛은 유자잎의 쌉싸래함이 다소 있으나 입에 넣으면 되레 단맛이 입안을 채우는 느낌이다. 텁텁하지만 않은 것도 유자잎 덕분인 듯하다.

◇'할매' 손맛으로 = 주말에는 전국 곳곳에서 많으면 400~500명이 찾는다고 했다. 서울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아들 김운성(51) 씨도 어머니를 돕고 있다. 김 씨는 "워낙 바빠서 손님들이 택배 등을 부탁해도 해줄 수가 없어요"라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앞으로 공간만큼은 조금 넓혀볼 생각이다.

또, 바쁜 까닭 가운데 하나는 아직도 일일이 손으로 작업해서다. 쌀은 하루 정도 물에 불려 찐다. 고두밥이 익으면 펴서 널고, 누룩을 부숴 밥과 섞는다. 이걸 다시 양 조절을 해 독에다가 물과 함께 넣을 때까지 할매 손을 거치지 않는 과정이 없다. 유자잎은 고두밥과 누룩을 섞을 때 갈아 넣는다.

할머니는 별 기술이나 비법은 없다고 누차 강조했다.

독에 안쳐 숙성한지 일주일쯤 된 모습.사나흘만 더 지나면술상에 올려맛볼 수 있겠다.
"따시구로(따뜻하게) 하면 쉬어버리고, 너무 추우면 얼고, 그것(온도) 조정을 잘 해야 돼. 욕심부려 술 양 늘리려고 묽게 거르면, 되레 맛이 없어. 물을 세 번 붓고 손으로 세게 치면(거르면), 막걸리 양은 적어도 맛이 있는 거지."

술이 얼추 다 된 시점에 독에서 나오는 전주도 절대 떠주지 않는다고 했다. "바가지로 갖고 막 저어주지. 전주도 못 떠줘. 그거 떠주고 남은 걸 거르면 술 맛이 없어지니깐. 뻑뻑해서 못쓰기도 하고."

술은 독에 안쳐 9~10일 숙성을 거친다. 평균 온도는 18~20℃. 한 임신한 아내와 남편이 주문한 막걸리를 사서 나가는 순간이었다. 할머니가 한 마디 덧붙였다. "예전에 아기 가진 사람이 여기 자주 왔는데, 이거 먹고 그리 좋다데. 허허."

막걸리는 흔들어도 새지 않는, 주문 제작한 통에 담는다. 1.5ℓ남짓 페트병 하나 5000원. 안주 모두 5000원(가오리 요리 1만 5000원). 남해군 남면 홍현리 가천 다랭이마을 856번지. 055-862-8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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