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 나들이가 많아졌다. 단풍 고운 산도 좋지만, 따스한 햇볕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더 높아진 하늘과 하나 되어 반짝이는 파란 바다도 좋다. 남해군 삼동면 지족리 앞바다에 가면 '죽방'이 몇 개 서 있다.

'죽방'은 밀물과 썰물에 맞추어 물을 따라 들어온 생선들이 갇혀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서 잡는,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어로(漁撈)법이다. 죽방에서 잡힌 멸치는 그물에 치이지 않아 비늘이 그대로 살아 있어 품질이 좋고, 연안에서 잡아 바로 쪄서 말리니 그 맛도 더 우수하다고 한다. 이 죽방에서 잡히는 멸치가 얼마 전 지리적 표시제 인증을 받았다는 소식에 늘 준비하는 음식 재료였으나 무심히 지나쳤던 멸치를 다시 쳐다보게 된다.

멸치는 성질이 급해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죽어 부패하기 쉽다. 그래서 산지에서 바로 쪄서 말린 상태인 마른 멸치로 흔히 유통된다. 멸치잡이 성수기인 4~7월에 잡히는 큰 멸치는 생으로 조림을 해 쌈과 함께 즐기거나, 비늘과 뼈를 제거해 회무침으로 즐기기도 하고, 소금과 함께 발효시키면 젓갈로 즐길 수 있다.

생멸치 무게의 약 20%로 소금을 켜켜로 넣어 삭힌 멸치젓은 간단한 양념만으로도 좋은 반찬이 되고, 오래 두면 위에 뜬 액젓이 김장철에 요긴한 재료가 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멸치는 찌고 말려 가공한 마른 멸치로 상품으로 나오는 멸치는 크기에 따라 대멸, 중멸, 소멸, 자멸, 세멸로 나뉘는데, 집에서 두루두루 쓰려면 5~7㎝ 정도가 국물을 내거나 볶음이나 조림으로도 적당하다.

좋은 멸치는 비늘이 벗겨지지 않아 흰빛을 많이 띠며, 모양이 반듯하고, 크기가 고른 것으로 검붉은 빛이나 노란빛이 많이 도는 것은 멸치에 함유된 기름이 산화되어 찌든 것으로 피하는 게 좋다.

1850년경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는 "동북 해수족 가운데 추(鰍=미꾸라지)와 같은 작은 생선인 천어(賤魚)가 있는데 '며어'라고도 한다. 한 번에 많이 잡히며 미처 말리지 못하면 썩으므로 거름으로 쓰기도 하고 말린 것으로는 반찬을 만든다"고 했다. 1850년경에야 멸치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는 즐겨 먹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외국에는 안초비(anchovy)라 하여 대멸 크기의 멸치를 소금 다량에 절여 살만 발라내고 올리브 오일을 가득 채운 병조림이나 통조림으로 가공해 샐러드, 피자, 스파게티 등에 이용한다.

풋고추 숭숭 썰어 넣은 멸치젓갈과 알배기배추 한 입도 좋고, 멸치액젓에 무친 각종 채소 겉절이도 좋다. 푹 삶은 멸치 다시 국물에 말아 먹는 국수 한 그릇도, 꽈리고추나 마늘을 넣어 볶은 멸치도 좋은 찬이다. 작아서 한 마리씩 절대 먹을 수 없는 세멸은 달걀말이에 넣으면, 씹히는 맛과 영양을 모두 챙길 수 있다. 마른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서 즐겨도 입과 몸이 모두 만족하는 먹을거리가 된다.

/신정혜(재단법인 남해마늘연구소 기획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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