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속에 잊힌 가야.통일신라 찾아

창녕이 유명해진 것은 화왕산 억새와 부곡온천 때문이다. 최근에는 우포늪(소벌)이 더해졌다.
반면 조상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고장인 점은 잊혀 가는 듯하다. 가야에서 신라를 거쳐 온, 역사가 오랜 땅답게 유물.유적이 널려 있는데도 말이다.
창녕에는 불교 유적이 꽤 많다. 술정리 동3층석탑(국보 34호)과 술정리 서3층석탑(보물 520호), 탑금당치성문기비(보물 227호).송현동 석불좌상(보물 72호) 등이 흩어져 있다.
술정리 동3층석탑은 바다횟집이 즐비한 시장통 동명목욕탕 아래 주택가에 있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 견줄 만큼 균형미와 직선미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8세기 후반 통일신라의 건축문화가 지방으로 퍼져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도내서는 가장 오래된 탑으로 꼽힌다.
기단은 손때가 묻어 반질거리는데 구멍도 여럿 패어 있다. 아이들이 수백년 동안 풀반찬을 찧고 쌀모래를 빻으며 소꿉놀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피가 돌지 않는 돌로 쌓은 신앙의 상징에다 조상의 동심이 천진스레 깃들였다고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서3층석탑은 이보다 100년쯤 뒤진 것으로 서쪽으로 내려와 왕복 4차로 도로를 지난 다음 농협 공판장 뒤로 난 길을 따라가면 들판과 얄궂은 공장 하나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기법이 처지는데다 규모도 작아 시대를 반영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군청과 명덕초교 사이의 골목을 따라가면 탑금당치성문기비가 나온다. 앞면에 비를 세운 까닭이 적혀 있고 뒤에다 보살상을 새겨 놓은 드문 양식인데 신라 헌덕왕 때(810년) 세웠음을 알게 해주는 기록도 함께 있어 예사롭지 않다.
화왕산 들머리에 있는 송현동 석불좌상은 석굴암 본존불과 같은 양식인데 자연석에 새긴 마애불이라는 점이 다르다.
창녕읍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신라 진흥왕 척경비가 있다. 옛 이름이 비사벌인 창녕은 가야시절부터 다툼의 한가운데 있었다.
동쪽에 화왕산이 버티고 있어 침략에 맞설 수 있는데다 서쪽으로는 우포늪(소벌)을 지나 낙동강에 이르기까지 물산이 풍부한 너른 들판과 강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가야제국은 554년 관산성에서 백제.왜와 연합해 신라와 싸웠으나 전멸하다시피 하고 말았다.
이어서 556년 창녕의 ‘비화가야’는 신라 진흥왕의 군대에 무릎을 꿇는다. ‘정복자’ 진흥왕은 5년 뒤인 561년 창녕을 몸소 둘러보고 척경비를 세웠다.
척경비는 읍 동쪽의 만옥정공원에 있다. 창녕 사람들은 국보 33호인 척경비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신라의 함성, 진흥왕의 호령” 따위 글귀가 지금도 백일장에 등장한다.
1500년 전이기는 하나 가야의 옛 땅에 사는 가야 후손임을 조금이나마 인정한다면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랑스러움은 신라인의 느낌일 뿐, 가야인에게는 치욕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척경비 못미쳐 아래쪽에는 대원군이 양요를 맞아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 서양 오랑캐가 쳐들어 오는데 싸우지 않으면 회의를 할 뿐인데, 화의를 주장하는 것은 매국이다)”이라 새겨 전국에 걸쳐 세운 ‘척화비’가 있다.
그 아래에는 퇴천리에 있던 3층석탑이 옮겨와 있고 지은 지 400년 가량 된 객사도 88년 장터에서 이사왔는데 쇠못을 전혀 쓰지 않은 건축물로 유명하다.
만옥정은 창녕 사람들에게 다정한 쉼터 구실을 하는 공원이다. 조선시대 군수.현감들의 선정비도 늘어섰고 볼품없으나마 UN전적비도 한쪽 마당을 차지해 있는 사이사이로 벚나무가 그늘을 내리고 있어 자리를 깔고 한나절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다.
만옥정에서 왼쪽으로 가면 가야시대 고분이 떼지어 엎어져 있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두고 교동 고분군이니 송현동 고분군이니 나누지만 무슨 의미가 있으랴. 교동 12호분만 신라와 같은 적석목곽분이고 나머지는 모두 ‘입이 옆으로 터진 돌널무덤(橫口式 石槨墳)’으로 가야의 무덤 양식이니 가야문화의 독자성은 여기서도 인정된다.
그나저나 아이들은 고분과 둘레에 곱게 입혀 놓은 잔디만으로도 즐겁다. 마주 있는 박물관을 둘러보고 너른 잔디밭에서 시원스런 바람을 맞으며 가을 한 때를 누리는 것도 좋겠다.

▶가볼만한 곳 - 창녕 장날 기웃대기

창녕은 양파와 마늘.고추의 주산지로 유명하다. 해마다 가을철이면 고추 임시 장터가 서기도 한다. 때로는 몰래 사들인 다른 고추를 장에다 내다 팔면서 창녕고추라 속이다가 덜미를 잡히는 일도 종종 생긴다.
3일.8일마다 서는 5일 장날에 맞춰 대구나 마산.창원.부산에서 일부러 고추를 사러 오는 사람도 줄을 잇는다. 그러니까 추석지나 고추철이 되면 창녕읍 둘러보기를 장날에다 맞추면 ‘꿩 먹고 알 먹고’를 할 수 있겠다.
장이 서면 조그만 읍내는 온통 들썩인다. 명덕초교와 창녕약국 앞 거리에서부터 시작되는 시장통은 조그맣지만 아래위로 여러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다 곳곳에 난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장터 한가운데는 옷가지를 파는 난전들이 서고 주변으로는 국밥집이 들어선다. 저쪽에는 떡방앗간과 참기름집이 있고 건너편에는 강아지나 닭 따위를 팔고사는 공터가 있다. 옆에는 풀무질하던 대장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자취도 찾기 어렵다.
이쪽 길 따라 가면 어물전이 있다. 이른바 우포늪(소벌)과 낙동강이 가까이 있어 붕어.잉어.가물치 따위 민물고기가 싱싱하다. 어물전 바로 위쪽에는 농기구와 신발 가게가 있으며 아스팔트로 된 길따라 왼쪽으로 올라가면 상가가 이어진다.
또 곧장 가면 건어물전과 바다횟집.과일전이 잇따른다. 구경하느라 다리품을 팔다 지치면 천으로 가린 국밥집을 밀치고 들어가면 되겠다. 예전의 뚝배기 대신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아 주지만 맛은 그런대로 괜찮고 값도 헐하다.




▶찾아가는 길

창원.마산에서 창녕 사이 대중교통은 좋은 편이다.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창녕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20~30분 간격으로 있으며 창녕에서 돌아오는 차편도 오전 6시 4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이어진다. 걸리는 시간은 40분 정도.
진주 지역에서 창녕 가는 것도 생각에 따라서는 그리 어렵지 않다. 진주~창녕을 오가는 버스는 없지만 진주에서 마산 합성동 터미널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0분 간격으로 차편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주에서 마산을 거쳐 창녕까지 가는 데는 2시간 정도 걸린다고 보는 게 맞겠다.
자동차를 몰고도 손쉽게 갈 수 있다. 창원.마산이나 진주에서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대구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가 남지.영산을 지나 창녕 나들목에서 빠진다. 요금소를 지나면 곧바로 삼거리와 마주치는데 신호를 기다렸다가 왼쪽으로 틀어서 쭉 올라가면 ‘읍내’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차를 몰고 시내를 돌려면 창녕 시외버스 터미널 아래 고추.마늘.양파 임시 장터에다 차를 세우고(5일장이 서는 3일.8일은 피해야 한다) 들판 쪽으로 나가 술정리 서3층석탑을 먼저 둘러보는 게 낫다. 다음으로 동3층석탑을 거친 다음 군청쪽을 더듬어 탑금당치성문기비를 찾았다가 시장통에 들러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는 게 좋겠다.
아니면 임시장터를 지나 네거리를 건너 파출소가 보이는 지점에서 우회전, 다시 50m쯤 가다가 법원이 있는 왼쪽으로 꺾어들어 읍사무소에 차를 세워두는 방법도 있다. 바로 위가 만옥정이니까 척경비 등을 한 번 둘러보고, 걸어서 석빙고와 탑금당치성문기비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 다음 시장통과 골목길을 지나 동명탕 높이 솟은 굴뚝을 찾아 술정리 동3층석탑과 서3층석탑을 차례로 맛보면 되겠다.
서3층석탑에서는 다시 시외버스터미널로 나와 읍내 버스를 타거나 식구가 많으면 택시를 타거나 하면 읍사무소까지는 손쉽게 돌아올 수 있다. 여기서 다시 몰고 온 차를 타고 화왕산 들머리의 송현동 석불좌상을 구경하거나 읍의 북동쪽 끝에 있는 박물관과 고분군까지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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