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왕골서 흘러나온 맑은 물 사용해 톡 쏘는 상큼한 맛 특징일제 강점기에 생겨나 한때 80말씩 팔던 양조장지금은 찾는 사람 줄어 하루 10말도 채 안 나가

길이 험해졌다. 산청군 삼장면 삼장양조장까지 5㎞ 정도 남겨두고서다. 새 길이 놓이고, 헌 도로를 포장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거의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엔 막힌 옛 길을 만나기도 했다. 수왕주(水王酒). 삼장양조장 막걸리에 이 이름이 붙은 건 10년 전이다. 막힌 시장을 뚫고 막걸리 침체기를 벗어나려는 목적이었다.

◇삼장면 동네 막걸리 = 건강에 좋아 주목받고, 방송도 띄워 주고, 일본까지 수출하고. 정확하게 짚으면, 최근 막걸리 붐은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에서나 생기는 현상이다. 또, 연구 개발에 돈을 들이거나 큰 유통망이 있는 몇몇 막걸리만 그렇다는 얘기다.

주전자나 말 통을 들고 가서 퍼오던, 일상 가까이 있던 '동네 막걸리'는 현재 많이 사라졌다. 안타까운 건 막걸리가 농촌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일이다.

   
 
 
"막걸리가 건강에 좋다고 알리곤 있지만, 아직 싸구려 술로밖에 인식되지 않는 거지. 맥주에 소주 타서 마시는 그걸 뭐라 하노? 소맥이나 즐기지. 맥주와 소주한테 서민 술이라는 자리를 완전히 내주고 말았어." 삼장양조장 이기석(60) 대표의 말이다.

이 대표는 1974년 부모에게 양조장을 물려받았다. "옛날 촌에서 양조장 하면, 제일 잘 나가는 사업이었지. 타작이나 모심기할 때 뱃심을 두둑이 채워주는 게 막걸리였거든. 한두 되 받아놓고 먹어 가면서 일했는데……."

삼장양조장은 일제 강점기부터 현 위치(산청군 삼장면 석남리 141번지)에 자리했다고 한다. "예전 삼장면 소재지가 이 근처에 있었다고 들었어. 양조장도 그때 생긴 거지. 6·25 전쟁 당시엔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으로 행정기관이 남쪽 아래로 옮겨갔다고 하던데. 지금 면사무소도 여기서 4㎞ 떨어져 있어."

이 대표의 부모는 해방 이후 양조장을 사들였다. "어머니 대는 하루 70~80말씩 나가던 게 지금은 5~10말로 수요가 확 줄었어." 그는 산청군의 상황도 전했다. "1개 면에 양조장이 꼭 한 개씩은 있었어. 산청군이 11개 읍·면이고, 양조장도 총 12개였는데, 지금은 7~8개라던데……. 이해 타산이 워낙 안 맞아 그만두기도 하고, 이제 막걸리에 명줄 붙이는 건 안 되지."

얼마 전, 도로 확장 공사로 그가 어릴 적부터 살던 집과 옛 양조장이 뜯겨 나갔다. 양조장 역사는 바로 옆 새 건물에서 이어지고 있다. 작은 사무실을 포함해 약 139㎡(42평) 규모다. 그는 산청군 삼장면과 시천면 일대에 막걸리를 직접 나르고 있다. 지금은 양조장을 아들 이름으로 해뒀는데, 직장에 다니는 두 아들이 이어받을지는 모르겠다고.

촌에서는 아예 소비가 없다고 봐도 무관하고, 이따금 관광 온 도시 사람들이 막걸리를 맛본다고 했다. 지역 주민과 더불어 살아나는 '동네 막걸리'가 절실해 보였다.

   
 
 
◇막걸리는 물 맛이다 = '수왕주'라는 이름은 양조장 근처 지리산 수왕골에서 따왔다. "4㎞ 이상 깊숙이 들어가는 산 골짜기인데, 거기 물이 이리로 흐르거든." 인터뷰 중에 양조장 한 편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계속 들렸다.

"좋은 물은 양조장이 생기게 했지. 막걸리에 물은 생명이거든. 물이 좋아야 술 맛도 좋은 법이지."

막걸리는 예민하다. 발효 과정에 필요 없는 균이 조금만 들어가도 맛은 변하고 만다. 수질은 물론, 물속 미세한 성분들이 맛에 영향을 끼친다. 양조장마다 막걸리 맛이 다른 까닭도 쓰는 물이 다르기 때문.

경기 포천이나 충북 영동 등 일부 지역 막걸리가 이름난 이유도 물이 좋아서다. 양조장이 터를 멀리 옮기면 술 맛이 변한다는 말도 물이 바뀐다는 뜻이다. 수왕골 맑은 물로 담그는 수왕주 막걸리에는 톡 쏘는 듯한 맛이 있다. 무덤덤하지 않으면서 상큼함이 수왕골 물을 통해 느껴진다.

◇막걸리는 수학이다 = 막걸리 제조는 국세청 기술연구소에서 시음해 승인한 방법에 따른다. 제조장들은 원료 양, 온도 등 세밀한 조건을 똑같은 기준에 맞춘다. 특히, 발효 중인 술독의 온도(품온)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삼장양조장 안, 벽에 걸린 온도계도 쌀쌀한 바깥 날씨와 달리 약 20℃를 가리키고 있었다.

온도는 누룩과 쌀, 밀가루 등의 비율에 따라 술을 안쳐 완성하는 데까지 조절된다. 보통 1주일 동안 숙성을 거치면, 온도는 상승 곡선을 그리다가 술이 다 된 시점부터는 내리막이다. 전체적으로 포물선이 된다. 여기서 공식이나 복잡한 수식이 나온다.

"막걸리는 워낙 민감한 놈이라 제조 과정도 까다로워. 무더운 여름철에는 효모가 죽어버릴 수도 있어서 온도계를 들고 살아야 해."

이 대표는 기준보다 온도가 높아 효모가 잘못되면, 냄새부터 비릿하게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온도가 너무 낮으면, 효모는 죽지는 않지만 활동을 하지 않아 술이 맛없어진다. 품온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빨리 거른 막걸리에는 효모가 덜 숙성된 상태라 숙취가 뒤따른다.

수왕주는 1.7ℓ와 750㎖로 두 가지 통에 담긴다. 알코올 도수는 6%. 1말(1.7ℓ 12병) 단위로 전화 주문도 가능. 2만 원. 택배 값은 주문자 부담. 지리산 수왕주 제조장(삼장양조장), 산청군 삼장면 석남리 141번지. 055-972-8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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