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람이 시린지 귀뚜라미도 울지 않습니다. 추석 들녘에는 메뚜기가 한창이었는데 행동이 아주 빨라서 잡기 힘들었는데요. 메뚜기들의 힘이 빠질 때쯤이면 가을이 깊어 무서리가 내리겠지요. 억새꽃 흐드러진 야산은 갈 빛이 완연합니다. 잎새들 사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아래 쓴풀, 물매화, 용담 등 씨앗을 여물리는 가을꽃들의 갈무리가 한창입니다. 꽃도 잎도 지천으로 솟아 빛깔도 따로 없이 피고 지는 황록색의 꽃들이 진 자리에 볼록 볼록 씨앗들이 맺혀 가는 걸 보면서 저곳에 꽃이 있었구나 싶습니다.

그 중의 가장 으뜸이 도꼬마리가 아닐까 하는데요. 쇠무릎, 도깨비바늘, 도꼬마리, 진득찰 같은 풀들은 꽃이 예쁘지 않습니다. 녹황색이거나 작고 미미한 꽃잎이 달려 있어 꽃을 피우는 식물이라는 생각이 안 들 때가 많은데요. 가을 숲에 들어가면 옷에 가득 풀씨들이 달려 나옵니다. 주로 동물의 몸에 붙어서 번식을 시도하는 풀들의 씨앗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종류의 풀들은 예쁜 꽃을 피울 필요가 없습니다. 번식 수단이 벌 나비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람이나 동물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섶에 주로 잘 자랍니다. 개울가나 길가에서 흔하디흔해서 개똥밭 굴러다니는 잡초로 분류되던 풀들이 가장 생명력이 강할 뿐더러 우리에게 좋은 약재로 쓰이는 풀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도꼬마리도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으뜸인데요.

도꼬마리 열매.
4~5월에 도꼬마리의 무성한 풀잎부터 열매, 줄기, 뿌리까지 모두 약재로 쓰는데요. 단오에 채취한 도꼬마리 잎과 줄기는 특히 약성이 좋아서 그것을 푹 달여 농축시켜 만든 고약을 '만응고'라 하는데 이것은 악창·종기·피부병·두드러기 등등에 아주 좋은 효과를 나타내며 말린 잎을 갈아 술에 타서 마시면 감기를 너끈히 치료하기도 한다는데요. 특히 뼈마디가 쑤시고 아픈 감기에는 씨앗을 달여 더운 물에 하루 세 번 마시면 거뜬히 낫는다고 합니다.

특히 열매는 '창이자'라 하여 가장 좋은 부위인데요. 고슴도치 털 같은 갈고리들을 불에 그을려 잘 마모시킨 뒤 볶아 가루 내어 물에 타서 콧속을 씻어내면 비염과 축농증에 뛰어난 효과를 낸다고 합니다. 그 물로 양치도 하고 잎과 함께 달여 마시면 술도 끊을 수 있다는데요. 도꼬마리 달인 물을 마시면 술맛이 떨어지고 술독도 모두 풀어져 일거양득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씨앗 몇 홉을 물에 넣고 푹 달여 하루 세 번 마시거나 열매 분말로 환을 지어 먹으면 중풍을 치료하기도 한답니다.

   
 
 
지난번에 도꼬마리를 구하러 들판으로 나간 적이 있는데요. 동물들이 지나다니기 힘든 곳에 난 도꼬마리는 씨앗이 그 자리에 떨어져 밭을 이룹니다. 그래서 한 포기를 발견하면 그 주변에 쭉 둘러보면 많이 구할 수 있습니다. 풀모양이 어떻게 생겼나 몰라서 궁금하면 그냥 풀숲을 헤치며 한 바퀴 돌아 나와 보세요. 온 몸에 주렁주렁 달려 나오는 도꼬마리 씨앗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쯤 들녘으로 나가 겨울채비로 도꼬마리 몇 포기 뽑아서 겨울 상비약으로 준비해 두는 것도 건강한 겨울을 나는 지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운영위원장)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