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판 원두·간단한 도구로 쉽게 따라할 수 있어드리퍼·서버 1만∼3만 원 선, 없어도 커피 뽑기 가능

김탁환이 지은 소설 <노서아 가비>. '노서아 가비'는 고종이 즐긴 러시아 커피다. 고종은 커피를 달게 즐기다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 당시에는 쓴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쓰디쓴 맛이 시대의 우울함을 달래줬을까.

세계 물동량이 석유에 이어 2위일 만큼, 많은 사람이 커피를 즐긴다. 그러나 고종처럼 자기 입맛에 맞는 커피를 찾아 즐기는 사람은 주변에 드문 것 같다. 또, 커피숍에 가서 주로 마시는 메뉴는 있을지언정, 손수 원두를 사서 쓰는 사람도 참 어렵게 눈에 띈다.

도미니 씨도 커피에는 문외한이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커피숍에서 마신 깔때기 모양의 드리퍼로 거르는 핸드 드립(Hand Drip) 방식으로 뽑은 마일드 커피 맛에 반했다. 스타벅스나 커피빈 등과 같은 브랜드 커피숍에선 잘 느껴지지 않던 구수함과 풍부한 맛이 있었다. 그래서 맛있는 커피를 찾아다니는 일을 즐기기로 했다.

     
 
     

그리고 손쉽다는 핸드 드립 방식도 배울 계획이다. 일단, 책 두 권을 샀다. 최근에 좀 잘 팔렸다는 <커피홀릭's 노트>(박상희 지음, 위즈덤하우스)와 <I LOVE COFFEE and CAFE>(이동진 지음, 동아일보사)다. '나도 바리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게 도미니 씨의 맘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 = 불과 두 달 전까지 도미니 씨 입맛에 착 달라붙는 건 자판기 커피였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인생의 단맛과 쓴맛에 대해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배우고 나니 커피 맛은 쓴맛과 단맛, 둘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다는 거였다.

커핑(Cupping)이란 커피 맛을 비교하는 일이다. 주요 잣대엔 단맛과 쓴맛뿐 아니라 신맛, 끝맛, 전체를 아우르는 맛 등이 있고, 향과 입에 물었을 때의 무게감인 바디감도 평가 기준이다. 이런 기준들로 자신의 입맛에 맞추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가 된다.

자판기 커피는 보통 인스턴트 커피라고 한다. 물에 녹였을 때 깔끔하면 인스턴트 커피다. 원두 커피는 찌꺼기가 남는다.

인스턴트 커피는 원두를 잘게 부스러뜨려 액체로 빼내고, 향미를 바꾸는 성분까지 곁들이고, 얼려 습기 없이 말린 것이다. 그래서 물에 잘 녹는다.

◇손때가 묻어야 비싸다 = 도미니 씨는 돈 없는 형편에 비싸게 먹는 방법까지 알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비싼 커피가 왜 그런지 아는 건 커피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음식은 손맛'이라는 말처럼 커피도 손을 많이 거치면 값이 뛴다.

생두는 커피나무 열매(cherry)의 씨앗이다. 나무의 하얀 꽃이 초록색 열매로 변하고, 이게 익으면 붉은색이 된다. 익은 걸 거둘 때 색을 가려 손으로 직접 따면 비싸진다. 이어 열매를 씻어 씨를 둘러싼 열매살을 말려 걷어내는 과정까지 손수 신경을 쓰면 또 값이 올라간다.

열매에 씨가 하나밖에 없으면 고급 원두로 쳐준다. 보통 씨는 두 개 들어 있는데, 한 개면 좋은 성분을 두 놈이 나눠 먹지 않고 집중 육성됐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후 생두를 볶아 원두로 만드는 로스팅, 다른 품종의 원두를 섞어 향미를 돋우는 블렌딩, 원두를 가루로 내는 그라인딩 등으로 값비싼 품종이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도 손을 많이 댈수록 자연스레 서민들과는 멀어진다.

◇누구도 내 커피 값을 매길 순 없다 = 웬만한 원두 커피숍은 원두를 갈거나 갈지 않은 상태로 판다. 또,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상표 달린 원두 커피 값은 대략 2만 원 안팎이다. 250g 정도인데, 이 양으론 평균 35잔 마실 수 있다. 한 잔이 500~600원인 셈이다.

로스팅이나 블렌딩이 꽤 시간과 공을 들이는 작업이라면, 이후 작업은 따라하기 쉽다. 그래서 원두를 사서 간단한 핸드 드립 도구만 갖추면 여느 바리스타 부럽지 않다.

원두를 잘게 가는 커피그라인더(분쇄기) 가운데 집에서 쓰는 건 2만~3만 원 남짓. 핸드 드립 세트를 구해서 만들어보는 건 내공을 더 키우는 길이다. 드립 세트는 1만~3만 원 정도로 사보자. 드립 세트는 필터를 씌우고 원두 가루를 얹는 드리퍼와 액체 상태 커피를 받는 서버로 구성된다.

드립 세트가 없어도 좋다. 머그잔, 종이컵, 젓가락만으로도 드립 세트를 대신할 수 있다. 머그잔에 젓가락을 올리고, 아래쪽에 구멍을 뚫은 종이컵을 여기에 얹으면 얼추 드리퍼·서버와 비슷해진다. 종이컵에 필터만 깔고 원두 가루를 넣어 물에 거르면 되는 과정이다. 야외에서나 여행할 때 이런 방법은 꽤 쓸모가 있다.

원두는 공기가 스며들지 않게 통에 담아 햇볕을 피하게끔 보관한다. 산소를 만난 원두는 부패하기 때문이다. 또, 원두는 볶은 지 2~3주 지나면 향과 맛이 떨어지므로 살 때 로스팅 날짜를 꼭 따져봐야 한다. 1주일 이상 지난 물건은 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다. 그리고 볶은 원두에선 가스가 나오는데, 포장지에 어느 정도 빵빵함이 있는 걸 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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