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을 지나면 어느 새 노랗게 익어 고개를 숙인 벼가 보인다. 가을의 황금빛으로, 한가위 보름달처럼 둥글며, 추수의 더위를 아삭함과 시원함으로 잊게 하는 과실이 있다. 배. 즙이 많고 단맛이 있어 예로부터 요리에도 쓰였지만 건강을 위한 식품으로도 널리 사용돼왔다.

우리가 먹는 배는 야산에서 자라던 돌배를 개량한 것이라 한다. 히말라야 남서쪽 산기슭에서 야생하던 돌배가 동쪽에 전해져 지금 우리가 먹는 배가 됐는데, 삼한시대와 신라의 문헌에 배에 관한 기록이 있고, 고려시대에 배 재배를 장려했다는 기록이 있다.

배는 품종도 다양해 <도문대작(屠門大嚼)>에 5가지가 나오고, 1920년 배 품종 조사 결과에는 학명이 알려진 재래종만 33가지에 달하며, 학명이 밝혀져 있지 않은 것도 26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건 '신고' 품종이며, 껍질이 얇고 노란빛이 더 강한 황금배는 캐나다, 중국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배는 수분 함량이 85~88%로 높으며, 다음 당분이 10~13%로 품종에 따라 차이가 있고, 섬유소 함량은 0.5%로 다른 과일보다 적은 편이다. 비타민도 그리 많지 않고, 사과보다 비타민 B1이나 B2 함량이 다소 높은 정도다. 무기물 중 칼륨, 나트륨, 망간이 전체의 75%를 차지하는 강한 알칼리성이다.

한방에서 배는 맛은 달고, 약간 시며, 성질은 양성으로 생이(生梨), 이자(梨子), 쾌과(快果) 등으로 불린다. <본초강목>에서는 폐를 보하고 신장을 도와 열과 기침을 억제하며, 담을 제거하고 종기와 술독을 푸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본초통현>에선 날로 먹으면 육부의 열을 제거하고 삶아 먹으면 오장에 음을 더한다고 했다.

배의 효능으로 민간에서 많이 활용되는 것이 기침, 가래, 천식, 기관지 질환의 예방과 치료 효과인데, 환절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가정에서 활용하는 방법으론 배 속을 파내고, 꿀로 채워 찌거나, 배 속을 파내고 황설탕을 채워 은박지로 싸 불에 구워서 우러난 물과 연근즙을 같이 마셔도 좋다. 목에 좋은 도라지와 함께 달여도 좋고, 생강과 함께 달여서 즙을 먹어도 목의 통증과 기침에 효과가 있다. 배의 이뇨 작용은 탄 음식이나 담배연기, 매연 등에 검출되는 발암성 물질인 다환방향족 탄화수소의 배설을 도와주고, 배즙은 돌연변이의 생성과 면역세포의 성장을 촉진한다.

이러한 배의 효능을 잘 담는 음식이 '배숙'이다. 통후추를 박은 배를 생강, 꿀과 함께 끓여낸 전통 음료로 오미자를 넣어도 좋고, 석세포가 많아 그냥 먹기 어려운 배로 만들어도 먹기에 적당하다. 얼음만 넣어 갈아 주면 청량음료 못지 않은 배 주스가 된다. 한식에서 감초 역할을 하는 배는 육회, 물김치, 샐러드, 냉채의 맛을

 
   
 

더하고, 고기를 잴 때 갈아서 넣어 주면 고기를 부드럽게 한다.

어떤 것이 좋은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데, 배의 꼭지가 튀어나오지 않은 것이 순수 품종이라 한다. 일단 모양은 둥글고 큰 것이 좋고, 전체적으로 선명한 황갈색으로 칙칙하지 않은 것, 배 고유의 점무늬가 큰 것이 좋다. 잘못 보관한 배는 바람 든 무처럼 퍼석해지는데, 이를 방지하려면 하나씩 랩으로 싸서 냉장 보관하는 것이 좋다.

/신정혜(재단법인 남해마늘연구소 기획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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