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종·타박상·골절 치료 효과
들판의 빛깔은 추석 빛깔로 알맞게 풍성합니다. 아침을 여는 소슬바람에 긴 옷 입고 나섰다가 땀범벅이 되어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날들입니다. 들판은 씨앗을 여물리는 작은 것들의 갈무리로 분주합니다. 길섶 아무 데고 앉아서 풀 줄기 하나 흔들어보면 꽃도 없이 열매 맺은 것들이 우수수 씨앗을 터뜨리기도 하고 안간힘으로 꽃을 피우며 마지막 사명을 다하는 풀들의 비장한 가을이 진지하기만 합니다.
이 닥풀은 아욱과의 한해살이 풀로 줄기에는 가시에 가까운 굳센 털이 있고 2m까지 키가 크며 가을이 되면 그 줄기를 잘라 요긴한 생활의 도구로 씁니다. 할아버지는 '에자구'라고 불렀는데요. 식물 중에서 줄기 껍질이 가장 질긴 풀입니다. 그래서 말 안 듣고 애먹이는 아이를 '에자구 같은 놈'이라고 불렀었습니다. 저도 말 안 듣고 뺀질거리면 '에자구 같은 놈'이라며 야단을 맞곤 했었는데요.
해마다 이 맘 때면 대마처럼 키 큰 닥풀 대를 잘라 묶어서 우물가 빨래터에 돌로 눌러 푹 담가 놓습니다. 한 보름쯤 지나고 나면 껍질이 물에 불어서 홀랑 벗어집니다. 그러면 그 껍질의 겉껍질을 벗기고 잘 다듬으면 훌륭한 끈이 됩니다. 나일론 끈이 나오기 전엔 유용한 생활 도구였지요. 할아버지는 이 닥풀 끈 하나로 온갖 것들을 다 만들어 내셨습니다. 지게 위에 얹는 바다리(발채)를 엮기도 하고 거름 소쿠리를 만들기도 했고 또 겨울 우리 썰매를 만들 때나 팽이 줄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닥풀 꽃이 환하게 피면 팽이치고 놀 겨울을 떠올리곤 했었는데요. 나일론 끈에 밀려서 이젠 닥
인간의 쓰임새와 용도에 따라 풀들도 더 많아지거나 사라지기도 하지요. 닥풀이 피어 있는 걸 보면 플라스틱에 밀려난 우리 대소쿠리의 운명을 보는 듯하여 마음이 애잔합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운영위원장)
박덕선 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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