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가득 널린 풀…열병 치료 탁월

가을이 너무 성급히 오는 것 같다고 창문을 닫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지난 밤 내내 불어왔던 스산한 바람 앞에 들판의 풀과 나무들은 우리들보다 더 다급한 마음으로 수런거렸겠지요. 이제 막 꽃피웠고 꽃 떨어진 자리 물도 안 말랐는데 언제 씨앗 여물리겠냐고 바쁜 마음이겠지요.

무학산 산책길 벚나무는 벌써 한두 잎 낙엽을 떨어뜨립니다. 아직 휴가지의 추억도 가시지 않은 나른한 여름을 벗어버리기가 뭔가 아쉬운데요. 바람의 습도에 가장 민감한 들풀들은 재빠르게도 가을꽃을 피웁니다. 길섶에 쑥부쟁이 꽃피운 걸 보고 가을이 가슴 안으로 성큼 밀고 들어옵니다.

꿩의다리
곧 사방에서 가을꽃이 피어나겠지만 여름 꽃들이 아직은 한창입니다. 잠시 인근 야산으로 나가면 키다리 마타리꽃이 무리무리 피어서 노란 꽃 숲을 이룹니다. 아직 노루오줌 꽃대도 실하고 산기슭 꿩의다리는 더 옹골차게 흰 꽃을 피웁니다.

껑충하고 마른 줄기 끝에 눈송이 같이 흰 꽃을 달고 산 숲을 밝히는 꿩의다리는 미나리아재비빗의 여러해살이 풀입니다. 키가 커서 쉽게 눈에 뜨이며 깡마르고 길쭉한 줄기가 꿩의 다리를 닮았다하여 '꿩의다리'라 이름 지어졌는데요. 8월에 가장 많이 꽃피고 9월이 되면 열매를 맺습니다.

민가 주변 야산에는 주로 좀꿩의다리가 피고요. 해발이 높은 지대에서는 자주꿩의다리·은꿩의다리가 주로 핍니다. 중부 이북에서는 금꿩의다리나 연잎꿩의다리가 핍니다. 전국에 걸쳐서 지역이나 산 높이에 따라 피어나는 꽃의 종류가 다른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이 꿩의다리 전초를 보면 세 가지에 아홉 개의 이파리를 갖고 있어서 삼지구엽초와 가지와 잎의 배열이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삼지구엽이라 부르기도 하는데요. 전혀 다른 종류입니다.

이 꿩의다리 역시 좋은 약초로서 민간이나 한방에서 청열·해독·인후염 등 각종 열병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항균·항종양·혈압강하 작용을 하는 귀한 약재로 쓰입니다. 가을이 지나면 뿌리줄기를 채취하여 말려 두는데요. 한방에서는 말린 뿌리를 '시과당송초'라 부릅니다. 민간요법으로 뿌리 10g에 물700ml를 붓고 달인 액을 반으로 나누어 아침저녁으로 복용하면 좋다고 하는데요. 좀 더 달여서 시럽을 만들어 먹어도 좋다고 합니다.

   
 
 
무심코 지나치면 그저 풀숲으로 보이는 그 속에 생로병사의 비밀과 그 해결법들이 가득 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지요. 꼭 인간을 위해 필요한 생명들이기 이전에 지구의 원활하고 건강한 순환을 위해 꼭 필요한 작고 질긴 이름들의 경이로운 삶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그들의 생애에서 우리는 문명의 이기로 발생하는 온갖 문제의 답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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