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 더위가 센 입김도 한 번 안 뿜어보고 여름이 다 갑니다. 한낮의 매미 소리 옹골찰수록 저물 녘의 귀뚜라미 소리 벌써 구성집니다. 올해는 열대야 때문에 밤잠 설친 기억도 없는데, 선들거리는 밤바람에 코스모스가 만개했습니다.

흰 구름 뭉친 하늘은 푸르디 푸르러서 가을날의 잠자리 떼가 날아오르기도 합니다.

지난주는 아이들과 봉암갯벌 생태체험을 갔었습니다. 교실에 갇혀 에어컨 바람에 여름을 잊었던 아이들이 저희들이 살고 있는 도시 속에 이렇게 풍성한 갈대밭과 온갖 꽃들이 피고, 새들이 게들과 숨바꼭질하는 갯벌이 있었다는 사실에 신나 메뚜기 떼처럼 뛰어다닙니다. 갈대숲도 가을 준비로 꽃대를 밀어 올리고 낮은 언덕엔 마타리·메꽃·달맞이꽃이 피고, 노을빛 내린 봉암갯벌에 아이들의 웃음 같은 해당화가 만개해서 꽃들의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바닷가 모래땅에서 해변 풍경 장식

   
 
나는 제 흥에 겨워 "해당화 피고 지는 어느 섬마을에……" 콧노래를 부르며 바닷가 모래땅에 잘 자라는 해당화 이야기로 아이들의 시선을 끌어 봅니다. 열매를 따서 입에 넣으니 당도가 약해서 밍밍하다며 손을 내젓습니다. 나는 푸릇푸릇한 그 향기를 한 번 느껴보라고 연방 씨앗을 빼고 아이들의 입속에 과육을 밀어 넣습니다.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한 아이가 노래를 부릅니다. 어릴 때 불렀던 동요 속의 그 꽃이 이 꽃인 줄 처음 알았다며 감격하는 아이들과 함께 해당화처럼 붉게 가슴이 들떴습니다.

해당화는 장미과의 꽃으로 전국의 바닷가 모래땅에서 주로 자라며 5월에 시작해서 9월이 올 때까지 끊임없이 꽃이 피고 져서 아름다운 해변 풍경을 장식하는 사랑스런 꽃입니다. 홍자색 붉은 꽃은 바닷가 아련한 그리움의 상징이었지요. 그래서 바다와 관련된 노랫말이나 시구에 자주 등장하는 꽃이랍니다.

제가 어릴 때는 해당화가 핀 언덕에 유난히도 아이들의 발길이 잦았지요. 잘고 날카로운 가시가 수없이 박혀 있어 접근이 힘든데도 해당화 열매가 익기를 기다려 그것을 따서 속을 비워내고 불며 놀다가 먹는 재미가 쏠쏠했답니다.

만성관절염·당뇨병 치료 효과 탁월

어른들은 꽃봉오리가 예쁘게 맺히면 따서 말려 두었다가 약으로 쓰곤 했는데 '매괴화'라 하여 기가 쇠하고 울혈이 찼을 때 효능이 있고, 만성관절염, 토혈, 객혈 등을 치료하는 데 좋다 하여 아끼는 약재였습니다. 지금은 장미꽃처럼 어린 꽃봉오리를 잘 말려서 차로 달여 먹으며 향과 약효를 함께 즐기기도 합니다.

또 그 뿌리는 '매괴화근'이라 하여 당뇨병을 치료하는데 뿌리 6g 정도에 물 500ml 붓고 달여서 아침저녁으로 나누어 마시면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예쁜 만큼 많은 가시를 달고 있는 해당화의 꽃말은 '원망' 이랍니다. 섬마을 선생의 노래 가사에 나오는 말처럼 철새 따라 떠나버린 연인에 대한 원망이 서려 있는 걸까요? 머언 먼 바닷가를 향해 끝없이 피워 올리는 홍자색 그리움이 짙으면 원망의 마음이 꽃이 피고 열매로 맺겠지요. 한여름 뙤약볕 아래 당당하게 핀 해당화 한 송이에서 수많은 추억을 불러봅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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