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의 고향 '평양'의 맛

도산 안창호 선생이 시카고에서 한인들에게 연설할 때(1925년) "十年(10년) 전에 이곳을 지나갈 때에 장 씨에게 냉면을 대접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다시 와보니 참 반갑습니다"라고 하였으니 1915년 이미 미국의 시카고에 냉면집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평양냉면이 서울에 진출한 건 1920년대 말이라고 한다. 이때 낙원동의 평양냉면 집과 부벽루, 광교와 수표교 사이의 백양루, 돈의동의 동양루 등이 있었다. 이후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모든 언론 매체를 검색해 봐도 냉면에 대한 기사는 주로 평양에 집중되어 있었으니 이 당시까지는 냉면의 전국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사실 냉면의 전국화는 6·25 전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며 평양 등 평안도에 살던 피란민들이 남으로 내려와 호구지책의 하나로 문을 연 것이 바로 평양냉면 집이었고, 평양냉면 집이 잘 되니 함경도 함흥 사람들이 자신들이 즐겨 먹던 농마국수나 회국수를 함흥냉면으로 이름을 바꿔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물 육수나 전복, 석이버섯 등 고급 음식재료를 고명으로 쓰던 진주냉면은 경제성에 있어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에 경쟁 상대가 못 되고 사라져 명맥마저 끊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5년 전 부산냉면이라는 상호로 평양냉면을 하던 현재의 진주냉면 집이 재현 자료를 얻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평양냉면은 이렇게 6·25 이후 남한의 식생활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마산의 대표적인 맛집인 '함흥집' 냉면 이야기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함흥집' 창업주, 1대 고 임이순 씨와 고 최화순 씨 부부는 고향이 평안남도 강서군과 중화군이다. 그러니 '함흥집'의 냉면은 다소 질긴 함흥냉면이 아니라 면발이 쫀득한, 창업주의 고향 맛인 평양냉면이다.

평안도에서 피란 온 고 임이순 씨 부부 '평양면옥' 상호로 시작

평안도 지역에서는 동치미나 백김치를 담글 때 예전부터 꿩 육수를 써 김칫국물이 청신하면서 깊은맛과 감칠맛이 있어 향미를 더 했다.

이 국물에 메밀사리를 말고 동치미 무를 엷게 저며 고명으로 올렸으니 이 김치말이 국수가 평양 양반의 입맛에 닿자마자 '냉면'이라는 점잖은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함흥집 2대 김덕임 사장
평안도에서 마산으로 피란을 와 월영마을(경남대 앞 주공아파트) 자리 피란민촌에 터를 잡고 살던 고 임이순 씨 부부는 1952년에 보신탕과 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이후 현재 할매 멧돌국수집 자리에서 평양면옥이라는 상호로 냉면집을 열게 되었다.

평양면옥 집은 나름 성업을 하게 되어 1970년에 일본 적산가옥에서 황 씨라는 분이 하던 '함흥집'을 인수해 한우고기와 냉면을 주 메뉴로 장사를 계속하면서 마산의 유명 맛집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2000년 7월 26일 화재로 일본식 가옥은 전소하고, 그 자리에 다시 건물을 올려 2001년 5월에 문을 열었다. '함흥집'은 비교적 대물림이 일찍 이루어진 집이다.

2대로 경남대를 나와 창신중학교 영어 교사를 하던 아들 임석빈(55) 사장이나 1975년에 시어머니가 작고하고 1978년 시집오면서부터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가업을 이어야 했던 며느리 김덕임(54) 사장 모두 유업을 계승하여 마산의 제일가는 맛집으로 성장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노력해왔다.

그것은 조리 기법도 중요하지만, 최고를 지향하는 재료 선택이다. 쇠고기도 한우 중에 최고 등급인 A++아니면 최소한 A+을 고집하고, 냉면 육수 역시 최고급육의 정육을 준비하며 나오는 고기로 육수를 낸다. 메밀 역시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인근 함흥집 인수하면서 이름 바꾼 뒤 반세기 대물림

김덕임 사장은 "진실은 손님과의 무언의 약속이고, 그 신뢰 속에 가게가 성장한다"고 말했다. 그런 믿음으로 오늘까지 왔다고 한다.

맛의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어떤 사람이 무공해 재료에 조미료 넣지 않고, 사명감을 지니고 열심히 하다가 결국 망했다고 한다. 일본의 아지나모도(조미료)로 망친 우리의 혀끝이 맛의 진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함흥집'에서 2대째 대물림하고 있는 임석빈, 김덕임 부부가 조상이 조미료로 썼던 '맛난이'의 비밀을 파헤쳐 맛의 진실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마산시 두월동 2가 8-5번지. 055-243-6576.

/김영복(경남대 산업대학원 식품공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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