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자락 동심 속으로 ‘첨벙첨벙’

▶가을이다. 하지만 한낮의 햇살이 아직도 따갑다. 며칠 전 한바탕 비가 쏟아졌지만 더위를 깔끔하게 몰아내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한여름 무더위에는 비길 수 없겠으나, 조금만 낫게 움직여도 땀이 나서 겨드랑이가 끈끈하다. 때때로 시원한 한 줄기 물에 대한 아쉬움이 도지는 철이다.
혹시 여름휴가를 다녀오지 못한 이는 없는지 모르겠다. 시원한 강바람을 쐬면서 꽃길이나 강길 따라 가는 길 끄트머리에 2단으로 겹쳐진 폭포가 하나 있기 때문이다. 합천군 용주면 황계리 황계폭포. 비가 내린 다음에 들렀다면 달랐으련만, 비오기 전이라서 폭포수 줄기가 가느다란 것이 아쉬웠다.
폭포는 안으로 움푹 파인 절벽 위에서 20m 가량 아래로 쏟아지고 있었다. 물줄기가 내리꽂히는 자리에서는 50대 초반의 장년쯤으로 보이는 남자 5명이 속옷 차림으로 돌아가면서 물을 맞고 있었다. 조용한 평일 오후 한 때, 서로 낄낄대고 밀쳐 가면서, 때로는 물이끼에 미끄러지면서 어울리는 품이 꼭 꼬마들 같다.
보통 때 같으면 눈살을 찌푸려도 한참 찌푸렸을 테지만, 이날만은 오히려 ‘얼마나 시원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곡 들머리에서부터 500m쯤 걸어오르느라 더웠기 때문만은 아니고, 보는 사람의 가슴속에 무언가 답답한 기운이 쌓여 있었나보다.
폭포 아래에 돌웅덩이(沼)가 하나 움푹 파여 있다. 그 밑에는 다시 높이가 6~7m쯤 되는 낭떠러지가 70도쯤의 각도로 걸쳐 있는데 물은 낮은 틈바구니를 찾아 흘러내리고 있다.
여기서는 아낙 2명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아마 위쪽 사내들과 일행인가보다. 사내들처럼 겉옷을 벗지는 않고, 물에다 발을 담그고 주위를 오가며 수건으로 물을 찍어 몸에 묻히고 있다.
아낙들은 발아래 있는 또하나의 웅덩이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아닌게 아니라 물빛이 푸르죽죽한 게 깊어보이기도 하고 물이끼 때문인지 아주 미끄럽기 때문이다.
마을의 촌로들은 올해도 남정네 한 명이 물에 빠졌다면서, 웅덩이는 빙석(氷石)이기 때문에 빠지면 나오기 어렵다고 들어가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10여 년 전부터 해마다 거르지 않고 한 명씩 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황계폭포가 여름 물놀이만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머잖아 폭포수의 시원함이 가시고 나면 황계 골짜기에도 단풍이 들겠지. 그러면 내리꽂히는 폭포수 아래 숲 속 빈터에 가만히 앉아 마지막 가는 가을의 화려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폭포 아래 잔잔한 물위에 시든 잎이 내려앉아 부르르 떨면서 흘러내린다면, 그리웠던 이를 떠올려 보며 가득 쌓인 낙엽을 밟아볼 수도 있겠다.
날씨가 더 추워져 겨울이 되면 폭포는 얼음기둥이 된다. 바위를 타고 내리는 평범한 폭포가 아니기에, 겨울에 이곳을 한 번이라도 찾은 이는 황계폭포의 얼음기둥만으로도 발품이 아깝지 않다고들 한다.
황계폭포로 가는 또하나의 즐거움은 황강을 끼고 달리는 도로에 있다. 합천읍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달리는 길인데, 왼쪽으로 펼쳐진 황강이 찾는 이의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백사장과 강물, 그리고 양쪽으로 퍼져 있는 습지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물고기를 잡는 황새들과 아직도 햇볕 아래 물이 그리운 하동(河童)들이 생동감을 더해준다.
길 따라 달리다 보면 강으로 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이는 곳이 몇 군데 된다. 동네 꼬마들이 팬티만 걸치고 노는 모습이 차창 밖으로 내다보일 양이면 이같은 생각이 더욱 굴뚝같아진다.


▶가볼만한 곳

황계폭포 가는 길에 반드시 들러볼 곳이 바로 함벽루다. 합천읍내로 들어와 곧장 가다가 육교가 바로 보이는 지점에서 오른쪽 샛길로 들어서면 된다. 죽죽로라는 길인데 TV드라마 <태조 왕건>으로 이름이 알려진 ‘대야산성터’가 먼저 나온다.
죽죽로는 신라시대 대야산성에서 전사한 김품석 성주의 부장 죽죽(竹竹)에서 따온 것으로 길가에는 조선 중종 때 만든 신라충신 죽죽비가 세워져 있다. 죽죽로 끝에는 활터가 있고 좀 걸어오르면 연호사라는 절이 나온다.
절 바로 아래 강쪽에 바짝 붙어 함벽루가 있는데 얼핏 보면 절에 달린 부속 건물처럼 보이는 게 영 이상하다. 함벽루는 고려시대 지어진 건물로 바로 앞에는 널따란 황강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는 정양늪까지 보인다.
풍광이 빼어나 이황과 송시열.남명 조식 선생 같은 분이 와서 놀다간 곳으로도 유명한데 이들의 글이 아직도 누각에 걸려 있고 바위벽에도 새겨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컴퓨터 글씨에 익숙한 후손의 눈에는 그것이 그것 같아 잘 구분하기 어렵다.
2층 누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조금 아찔한 느낌이 든다. 강가에다 바로 축대를 쌓고 지어올렸기 때문이다. 발 아래로 물이 출렁거리며 흐르는데 비가 올 때면 누각 처마의 물이 강으로 바로 떨어지는 배치로도 유명하다.
왼쪽으로는 대나무그늘이 강가로 내려서 있고 모래밭이 좁다랗게 펼쳐져 있다. 식구끼리 자리를 깔고 강물에 발을 담근 채 즐기기에는 그만이다.

▶찾아가는 길

창원.마산에서 남해고속도로 서마산 나들목을 거쳐 구마고속도로로 들어가면 된다. 대구 쪽으로 20분쯤 달리다 창녕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달린다.
합천으로 가는 국도 24호선인데 유어면과 이방면을 지나 적포교를 건너 합천군 적중.초계.율곡면을 가로지르면 합천읍이 나온다. 이렇게 보니 거리가 꽤 되는 것 같은데 실제로 가보면 80km 남짓이면 족한데다 걸리는 시간도 1시간 안팎밖에 되지 않는다.
합천읍 바로 못미쳐 나오는 개벼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때 지나간 길이다. 여기를 지나면 곧바로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왼쪽으로 난 1026호 지방도를 타도 되고, 다리를 건너 바로 좌회전해도 된다.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눈을 푸르게 적시고 싶은 이는 다리를 건너 달릴 것이고 대신에 들판의 넘실대는 벼이삭을 보면서 노란색 꽃을 눈에 담고 싶으면 다리를 건너지 말고 지방도로 접어들 것이다.
합천읍에서 황계폭포까지는 16km 정도. 읍내에서 7km쯤 되는 지점에서 다시 왼쪽으로 꺾으면 용주면 사무소 소재지가 나오는데 여기서부터는 외길이다.
황계리에서는 공영주차장에다 차를 세워야 한다. 길이 좁기 때문인데, 어떤 이는 농로 비슷하게 나 있는 폭포 가는 길로 자동차를 몰고 갔다가 애를 먹기도 한다.
대중교통은 좋지 않은 편이다. 마산에서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버스가 하루 6차례만 오가고 진주에서는 10차례 남짓 버스편이 있다. 읍내에서 용주면 황계리 가는 버스도 자주 없어서 아예 자가용 자동차를 몰고 가는 게 낫고 아니면 읍에서 황계폭포까지는 택시를 타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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