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계속된다는 소식에 창밖에 눈이 자주 갑니다. 시골집 축담에 앉아 후두둑 쏟아지는 빗소리를 음악처럼 들으며 빗줄기에 튀는 흙 내음이 향긋하다는 생각에 빠졌던 고향의 여름날이 그리워지는 날입니다. 아파트 안에서는 손을 내밀어 봐야 비가 내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빗물에 젖어 하늘거리는 풀들의 몸짓도 물론 볼 수 없고요. 그래도 비를 몰고 오는 바람만은 선들선들 창틀을 넘습니다. 잔뜩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한기를 몰고 오는 것을 보니 아마 내일은 비가 내리지 싶습니다.

초록이 짙어 무거워진 신록들은 무성한 잎새 사이로 푸른 열매들을 살찌우며 풍성하고 여유로운데 한창 꽃을 피운 자귀나무 여린 꽃잎이 걱정입니다. 장맛비에 녹아버릴 것 같은 담홍색 실낱같은 꽃잎이 두려운 듯 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이 자귀나무는 콩과의 갈잎 큰키나무로 비자나무 잎 같이 잘고 긴 이파리가 마주 붙어 나며, 7월을 대표하는 나무라 할 만큼 주변에서 많이 피며 꽃이 아름답습니다.

자귀나무.
자귀나무는 주로 야산이나 마을 근처에서 자랐으나 요즘은 꽃도 아름답고 공해에도 강해서 가로수로 많이 심습니다. 그래서 도시의 화단이나 도롯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되었습니다. 지금 한창 꽃피우고 있는 자귀나무 꽃은 마치 섬세한 붓털 같은 흰 꽃술에 그 끝이 진분홍빛을 띠고 활짝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공작새가 깃을 펼친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푸른 나무 위에 채색된 솜털 구름이 내려앉은 것 같기도 하고요. 꽃이 지고나면 콩 꼬투리 같은 넓은 깍지 속에 흑자색 씨앗이 여뭅니다. 민간에서는 '합환수(合歡樹)'라 하여 부부간의 금실을 좋게 하는 나무라고 정원에 심어두고 그늘도 즐기고 꽃도 감상하며 그 줄기로는 약용으로 쓰기도하는 재주 많고 쓰임새 많은 나무랍니다.

합환수는 밤이 되면 이파리가 하나로 접혀서 잠을 잔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라도 자귀나무 잎처럼 하나가 되어 잠을 자면 좋아진다는 의미에서 부부 금실을 좋게 한다는 나무가 된 것이지요. 또 비타민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잎은 토끼나 소가 좋아해서 잎을 따다가 먹이로 많이 쓰곤 했다는 데서 '소찰밥'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한방에서는 줄기 껍질을 '합환피'라 하여 심신 불안, 우울증으로 인한 불면, 부정맥, 근골절상 등에 치료제로 씁니다. 합환피 10g에 물 700ml를 넣고 달인 액을 반으로 나누어 아침저녁으로 먹으면 좋은 효능을 보인다고 합니다.

   
 
 
후텁지근해서 짜증나기 쉬운 장마철이지만 뙤약볕이나 폭우 아래서도 제 본분 다하느라 묵묵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게서 삶의 지혜를 얻고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로 숨 막히는 도시의 한낮을 그늘로 식히고 열섬 현상을 막는 나무들의 투혼을 기억하며 자귀나무 예쁘게 핀 그늘 아래서 하늘거리는 꽃의 유혹에 빠져보는 여유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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