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 찌짐'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기름 냄새 풀풀 풍기며 한 판(?) 뒤집고, 막걸리 한 잔 걸쭉하게 들이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김치전, 파전, 명태전, 감자전, 굴전, 육전…. 그 종류만도 무수한 전 이야기다.

심수봉 '그때 그 사람'의 노랫말처럼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라지만, 사실 그 사람보단 '파전'이 더 많이 떠오른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왜 그럴까. 다양한 풀이가 있는데, 반죽한 부침개를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넣을 때 소리와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닮아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리가 비슷해 자기도 모르게 입에 당긴다는 파블로프 학습효과다. 또, 밀가루는 찬 성질이라 한여름 무더위에 찌든 열기를 식히고, 파는 몸을 다소 덥게 해서 둘의 음양, 즉 음식 궁합을 맞춘 게 파전이란다. 기상청이 이번 주 경남 지역에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다. 시장통에서 전을 맛깔 나게 한다는 두 집을 찾아가면 어떨까. 마산 장군동 '고향집'에서는 명태전, 창원 상남동 '항아리수제비'에선 해물파전을 시켜 먹어봤다. 두 집 모두 작은 규모이지만, 그래서 손님과 주인의 소통(?)만큼은 다른 집보다 뛰어난 곳이다.

창원 상남시장 '항아리수제비'

'항아리수제비'는 복층 구조의 상남 전통시장, 3층에 자리해 있다. 오징어, 새우, 조갯살 등 애칭 '해물 삼형제'가 파전의 주된 재료다. 형제가 어우러진 해물파전에는 매콤함을 곁들이는 땡초(매운 고추)가 빠질 수 없다. 해물이 씹히는 맛을 살려주면서 바삭함도 있었다.

해물파전의 짝꿍은 수제비다. 이 집 단골들도 자주 찾는 쌍이다. 밀가루 음식이 당길 때 함께 먹는 것이다. 담백한 국물 한 숟갈 뜨면, 느끼함을 없애주는 듯했다. 해물파전과 수제비 하나씩 시켜도 두 사람이 먹기에 모자람 없는 양이다.

'항아리수제비'에서는 30대 후반의 젊은 사장이 반긴다. 김영순 사장이다.

주방에서 홀로 일하던 김 사장에게 파전 굽는 비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비법이라면, 배운 그대로 하는 거죠. 뭐~" 김 사장은 6년 넘게 이 자리를 지켜왔다.


그는 큰 솜씨는 아니라면서 수줍은 듯 말했다. "반죽을 천천히 많이 저어 가루를 전부 풀기보단, 뭉치지 않게 될 수 있으면 빨리 저어야 해요. 밀가루만 오래 힘껏 젓다보면 팔만 아프고, 효율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선 센 불에서 빨리 구워야 약간 두꺼우면서도 바삭하게 구워져요. 파전은 세 번 정도 뒤집는데요. 뒤집을 때마다 양손에 뒤집개를 쥐고 속까지 익을 수 있게 찢어주죠. 그래야, 겉은 고소하고 속은 부드러워지는 것 같아요."

빨리 젓지 않으면, 글루텐(끈끈하게 달라붙는 덩어리)을 형성해 나름 쫀득하긴 해도 바삭함이 없다고 했다. 밀가루 반죽에 부추를 넣고, 프라이팬에 올린 후 해물과 매운 고추를 얹어 푸짐하게 굽는다.

북면에서 사들인 동동주를 내놓는다. "마산·창원 사람들이 대부분 북면 막걸리 맛에 젖어 있더라고요." 김 사장은 직접 밭에 심어 수확한 콩을 갈아 바로 삶아서 내놓는 콩국수(4500원)를 다음에 꼭 먹으러 오라고 했다. 해물수제비 4500원·해물파전 7000원. 창원 상남동 16번지 상남시장 3층(분수광장 쪽). 055-282-4770.

마산 장군시장 '고향집'

마산시 장군시장 들머리에 있는 '고향집'에서 명태전을 먹었다. 출출함을 달래려고, 생갈치조림과 명태전을 달라고 했다. '고향집'을 찾은 시간이 저녁때가 가까워서인지 주인이 대뜸 물어봤다. "술은 뭐로 하시게?"

그만큼, 저녁 무렵 친구나 동료와 함께 술잔 기울이려고 오는 손님이 많다는 거다. 메뉴판에 적힌 '탁주 1되 5000원'이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고경순(53) 사장은 고성군 하일면 막걸리라고 일러줬다. 특유의 달곰함 때문에 사이다를 섞었는지 자주 물어본다고 한다.

명태전은 파전보다 푸짐하진 않으나 듬성듬성 뜯어져 나오는 명태살의 부드러움과 바삭한 맛이 섞인 매력이다. 역시 땡초가 얼근한 맛을 보탠다. 제사 음식으로 흔히 보는 조그마한 것과 달리 통으로 구워서 나왔다. "마산은 생선이 많은 동네라서 그런지 예전부터 오동동 일대나 어시장에 통제비로 굽는 데가 많았어요." 예전에는 머리와 뼈만 썼다는데, 지금은 살까지 통째로 굽는다고 했다.


명태 배를 갈라서 속을 다 빼고, 물기마저 바짝 빼준다. 튀김에 가까울 정도로 기름을 많이 써서 프라이팬에서 구워내는데, 그래야 바삭바삭하게 된단다.

고 사장이 장사한 지는 1년밖에 안 됐다. 하지만, '고향집' 터는 사연이 많은 곳이란다. 특히, 지금 40~50대 중년 남성들이 술 한 잔 하면서 추억담을 자주 이야기한다. "예전에 이 집에 내가 좋아하는 아가씨가 있었다는 둥 옛날 일을 회상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가옥 구조도 옛날 그대로다. 천장이 낮고, 흙집이라서 여름에는 시원하다. 얼마 전부터 마산 부림시장 닭전골목에서도 유행했던 양이 푸진 닭곱창(1만 원)도 시작했다.

마산시청 맞은편 옛 소방서 옆 장군천을 따라가다 보면, 장군약국이 보인다. 약국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고향집이 있다. 생갈치조림 1만 원·명태전 5000원. 마산 장군동 3가 11-10번지. 055-242-8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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