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구 이봉걸 뒤집기로 이기자 마산이 들썩"

'모래판의 여우' '인간 기중기' '털보장사'. 이 말만 해도 무슨 얘기를 꺼내려는지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알지 않을까. 씨름 얘기다. 1983년 시작된 민속씨름은 1980년대 야구·축구와 함께 3대 인기스포츠였다. 여름에는 에어컨이 없는 실내체육관에 부채 한 장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모래판의 군무를 즐겼다. TV중계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저녁 밥상은 뒷전이었다.

이런 추억을 제공한 '장사'들 중에는 이승삼도 있다.

마산실내체육관에서는 학산 김성률배 전국장사씨름대회가 열리고 있다. 모래판의 옛 향수에 젖어들기 위해 2일 오후 마산실내체육관에서 이승삼 마산씨름단 감독을 만났다.

◇"사람을 넘어뜨리는 게 너무 짜릿했다" = 이승삼 감독은 현재 마산에서 스포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마산씨름단 감독과 대한씨름협회기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감독이라는 호칭이 어색했다. 워낙 '털보장사'라는 애칭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이승삼 감독은 체질적으로 털이 많아 관리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에 고3 때부터 그냥 기르기로 하면서 '털보'가 되어버렸다.

사실 이 감독의 어릴 적 꿈은 프로레슬링 선수였다.

"마산상남초등학교 시절 씨름부 선수와 우연히 경기를 했는데 져 버렸다. 씨름을 배운 친구였기에 내가 지는 게 당연했지만 싸움이든 뭐든 져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충격이었다. 그래서 이기기 위해 시작했다."

이 승부욕이 이 감독을 결국 모래판으로 이끌었다. 시작 동기는 특이했지만 이후 이 감독은 씨름에 푹 빠지게 된다.

이 감독은 "씨름을 해 보니까 너무 재미있더라. 휴일에도 학교 씨름장에 샅바를 두개 들고 나갔다. 그리고 동네 청년들을 상대로 연습을 하고 그랬다. 사람을 넘어뜨리는 것이 그렇게 짜릿했다"고 회상했다.

◇'뒤집기 명수' 떴다 = 이승삼 감독은 민속씨름이 출범하기 한 해 전인 1982년 전국에 이름을 알린다. 대통령배대회 대학부 경기에서 205cm의 거구 이봉걸을 173cm의 작은 선수가 뒤집기로 무너뜨린 것. 당시 TV 중계로 이 장면을 본 사람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던 것.

이 감독은 "이때 이후 마산에서 난리가 났다. 어딜 가도 사람들이 알아보더라. 공짜 술도 많이 얻어 먹었다"며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왕년에 '뒤집기 명수'로 명성이 자자했던 마산 씨름꾼 이승삼 마산씨름단 감독. /남석형 기자 nam@
이 감독은 지난해 경남대에서 '씨름 선수의 손상 및 치료 실태에 따른 심리사회학적 분석'이라는 다소 장문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이유가 있었다.

"1983년 민속씨름 이준희와의 경기에서 큰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 밭다리 걸기 기술이 들어오면서 이준희가 3번 정도 힘을 쓰기에 내가 끝까지 버텼다. 안간힘을 다하다 결국 쓰러졌는데 옆으로 잘못 쓰러져 오른쪽 무릎 내측 인대를 크게 다쳤다. 하지만 의사의 출전불가 당부에도 3개월 후 경기에 나갔다. 경기를 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데 어떡하나. 이 부위가 완쾌되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무리하게 출전해 아무래도 더 오래가지 않았나 싶다."

이 감독은 천하장사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다. 제1회 미주천하장사 1품(2위)·제14대 천하장사 1품(2위)과 한라장사 타이틀 3번이 다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씨름선수 이승삼'에 대해 많은 기억을 하고 있다. 왜 그럴까?

"체구가 작다보니 밑으로 파고드는 스타일로 나갔다. 자연스럽게 뒤집기를 많이 시도했다. 손상주·최욱진·고경철, 그리고 내가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작은 체구의 선수들이 기술씨름으로 거구를 무너뜨리는 모습에서 짜릿한 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의 은근한 자랑이 이어졌다.

"당시 한 후배가 '행님 빨리 은퇴 안 합니꺼'라는 말을 하더라. 그 만큼 덩치 큰 선수들이 나를 만나면 두려워했다."

이 감독은 2년 후배 이만기와의 역대 전적에서도 2승 2패로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제14대 천하장사대회 1품(2위)을 차지할 때, 결승에서 이만기에 1-3으로 패해 끝내 천하장사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만기와의 인연은 깊다. 마산중-마산상고(현 용마고)-경남대까지 계속 한솥밥을 먹은 사이다. 은퇴도 이승삼이 1991년 3월 17일에 했고, 이만기가 공교롭게도 다음날 했다.

'학산' 김성률 선생에게는 어릴 적부터 씨름 지도를 받았다.

당시에는 마산상고에 초등학교부터 일반까지 지역의 모든 선수들이 일명 '도장'이라 불리는 곳에 모여 함께 훈련을 했다. 1980년대 씨름을 한 지역선수들은 모두 김성률 선생의 손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이날 이승삼 감독은 대회장을 찾은 각종 관계자들을 만나느라 동분서주했다. 스승을 기리는 대회이니 만큼 각별히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옛 장사들 정기적 만남 계속 = 이승삼 감독은 현재 민속씨름 동우회 회장을 맡아 매년 수차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모래판의 여우' 이만기는 현재 인제대 교수로,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는 사업을, 2006년 대전시의원에 출마했다 낙선한 '인간 기중기' 이봉걸은 현재 에너라이프 감독을 맡고 있다.

또 홍현욱은 농수산물 중매사로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고, '샅바싸움'으로 유명했던 장지영은 인하대 감독, 황대웅은 사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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