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P결별을 놓고 추측들이 무성하다. 한나라당은 뒤늦게 진의파악에 나서 여러 가지 정황설정을 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딱 부러지게 해답을 못찾고 있다. 코미디 같기도 한 그야말로 노회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 9단들이 한 일이니 점치기가 쉽지 않다. 본인들 역시 불편한 심기만 드러내 보일 뿐 속마음을 열지 않는다. 아직 정치적 손익계산서가 작성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예상치 못한 일로 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끙끙거리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정치일반적 심증의 재확인
사태의 발단은 JP의 한마디, 임동원 장관의 자진사퇴 암시였다. 어쩌면 쉽게 나왔을지도 모를 그 말이 끝내는 공조 2여의 명운을 갈라놓는 극약이 돼버렸다. 두 사람이 모두 극단적인 사태로 발전되리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을까. 그게 궁금하다.
JP는 지난 7일 처음으로 화난 심경을 털어 놨다. 사퇴불가를 고집할 경우 후유증이 클 것이라는 자신의 판단을 청와대가 과소평가했다고 서운해했다. DJ가 공조를 깨면서까지 소신을 고집하리라는 것, 그같은 막다른 길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애초에 파기를 결심한 선 행보가 아니었다는 추리가 나온다. 사퇴불가는 대통령으로선 물러날 수 없는 배수진이었고 JP의 독단은 그 선을 허무는데 한계가 있었다. 여러 갈래의 정치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상반된 견해는 결국 인간적 충돌에서 제 갈 길을 택한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DJ는 JP가 선문답같은 아리송한 태도를 버리고 주도 여당의 뜻을 따라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JP는 자신의 입지를 과신했을 가능성이 많다. 은근슬쩍 던지는 한마디에 천근의 무게가 실려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만일에 당략적인 배경을 앞세워 한 일이라면 자민련이 그렇게 시퍼런 불길을 지필 연유를 찾기가 어렵다. 다만 그들이 워낙 꿍꿍이 속이 넓고 깊은 터이므로 ‘의중진단’의 필요성을 전혀 도외시할 수는 없다. 정당을 거의 절대적 카리스마로 이끌어 온 공인으로서 100% 성질 가는대로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기싸움이나 힘겨루기가 절정에 달하면 그 다음 일을 반드시 가늠했음직하다. 그게 보스다운 상황판단이요 뱃심이다.
정치권에서 보는 대북문제의 시각차나 충청권 맹주자리 고수, 그리고 햇볕정책의 일관된 추진, 또 하나 대선을 겨냥한 킹메이커로서의 역할다지기 등 해법분석은 그 절정 상황에서 당연히 검토됐을 것이다. 이판사판이라고 하지만 사는 길을 택하는 것이야 무릇 생명체의 절대가치다. 집단을 거느린 고수들의 수읽기에서 자신의 건재를 확인하는 수순이 시작되면 그때는 이미 감성은 이성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된다.
그러나 천려일실(千慮一失)이랄까, 예기치 못한 돌출 악재가 발생했다. ‘이한동 변수’가 그것이다. DJ나 JP 두 사람이, 아니 어쩌면 DJ는 그동안 국정을 통해 호흡을 맞춰 왔으므로 자신은 서지 않지만 어떤 예단은 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JP는 날벼락을 맞은 꼴이다. 찬반투표 후에도 이한동 변수는 전혀 계산에 없었던 게 틀림없다. “사람됨됨은 고마움.무서움.분수를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독기어린 질타가 그렇고 “어제를 무시하고 유아독존.독선식으로 몰아내는 사고방식은 내 일을 망가트리는 것”이라는 자조섞인 푸념이 그걸 대변한다.
JP쪽에서 보면 배신이지만 총리 자신은 진로선택의 자유를 행사했을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역시 인간적 고민이 권력욕을 초월하지 못한다는 정치일반적 심증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것은, 사퇴정국에서는 좀 시일을 끌었다 뿐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는 한국적 정치철학으로 굳어버린지 오래다.
아직 약하지만 신선한 쾌감
돌출변수를 두고 우리가 고민해야 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당 대 당, 당과 개인간의 문제다. 여러 가지 정략적인 셈에 대입시키는 일이야 이해당사자간에 벌어지는 해묵은 정치놀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유유상종이니 민주당 정권 장악 전의 원래 모습으로 복귀한 것과 거의 비슷한 처지가 됐으므로 당연한 귀결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와중에 하나의 위안이 와 닿는다. 보스정치의 퇴조기미가 그것이다. 옷만 갈아 입었을 뿐이라고 자위할지 모르지만 3김 중 한 명이 그 권위에 치명타를 입었다. 또 다른 한 명도 개혁세력으로부터 꽤 곤혹스런 도전을 받았다.
세상이, 아니 독불정치가 그나마 변해가고 있는 듯한 조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아직은 약하지만 신선한 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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