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에 여름이 오면 아침 햇살이 비치는 풀숲 사이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달팽이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하얀 흔적을 남기며 천천히 움직이는 달팽이를 보면 이 세상이 모두 여유롭고 평화로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인지 꿈에 달팽이가 기어가는 것을 보면, 기다리던 일이 이루어진다는 옛말도 있다.

달팽이는 머리의 모양이 뚜렷하고 발은 넓고 편평하여 마치 배로 슬슬 밀며 다니는 듯해서 복족류(腹足類)라 부른다. 몸 전체의 신축성이 매우 크고 머리에는 두 쌍의 더듬이가 있는데, 큰 더듬이 끝에는 눈이 있어 명암을 구별한다. 더듬이 끝에 눈이 붙어 있는 생물은 이들밖에 없을 것이다.

   
 
 
몸에서는 점액이 분비된다. 움직일 때 물체와 마찰을 줄이고, 축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다.

또한, 이 속에는 사람의 침이나 눈물, 콧물에 들어 있는 라이소자임 같은 항균 물질이 들어 있어 세균에 감염되는 것을 막기도 한다. 입(치설)은 바늘귀 정도이고 그 속에 2만5900개의 이빨이 들어 있다.

달팽이는 껍데기가 있는 달팽이와 껍데기가 없는 민달팽이로 크게 나눈다. 약 6억 년 전쯤 고생대 캄브리아기에 바다에서 나타났다고 하며, 1천만 년 전쯤에 뭍으로 올라와 생활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물에서 나와 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훨씬 더 위험한 삶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속에서보다 수정(受精) 기술을 거의 완벽하게 발전시켜야 하고, 암컷들은 해부학적으로 훨씬 더 '여성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달팽이는 암수한몸이라 제 몸에 난소와 정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생식공으로 짝짓기 때 음경을 내어 정자를 교환하기도 하고 알도 낳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짝짓기를 할 때 제 몸에서 난자와 정자를 다 만들어내지만, 제 것으로 수정하지 않고 남의 정자를 받아 수정하는 것이다. 가까운 유전자끼리 결합하면 다음 세대의 형질이 나빠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달팽이를 '와우(蝸牛)'라고 하는데, 소처럼 느리므로 붙여진 이름이라 생각된다. 세상이 좁다는 것을 비유할 때는 '와우각상(蝸牛角上)'이라고 하고, 하찮은 일로 다투는 것을 '와각지쟁(蝸角之爭)'이라 한다.

굼뜨면서도 꾸준히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을 달팽이 같은 사람이라 부르며,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아마 세상살이가 너무 바빠서 이제는 느리게 살고 싶은 마음에서 일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이 많아지면 걷고 싶어 한다.
 
   
 
천천히 걸으며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해내기도 한다.

우포늪 풀숲 사이로 생각이 많은 달팽이가 느릿느릿 움직인다. 느림은 게으름이 아니고 빠름은 부지런함이 아니다.

느림은 여유요, 안식이요, 성찰이요, 평화이며, 맹목적인 빠름에 대한 뉘우침이다. 쓸모없는 땅인 듯 보이는 우포의 느릿한 달팽이에게서 느림의 미학(美學)을 배워보자.

/김인성(우포생태교육원 담당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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